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성화미술(종합)

섬세한 질감 살린 회화 같은 조각 작품, 친근하고 편안함 전해.

참 빛 사랑 2020. 2. 10. 20:43


[한국 가톨릭 미술 여성 작가들] (9,끝) 조각가 임송자 리타


▲ 서소문 순교자 현양탑은 서소문성지 조성 사업의 하나로 1984년 12월 22일 완성된

임송자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1996년 서울시 자원재활용처리장 시설공사를 위해 철거됐다가

1998년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십자가의 길 기도 동산에 재설치되면서

작품의 원형을 잃고 말았다.



▲ 안양 중앙성당의 ‘부활 예수상’. 임 작가의 작업 철학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임 작가는 ‘부활 예수상’을 제작하면서 성당 건축 내에 

   성상이 통일감 있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실제 크기의 작품 모형을

   성당에 직접 배치해보면서 지금의 설치 방식을 찾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 오른쪽은 7개의 부조 작품이 새겨진 현양탑 전경.




※이번 글에서는 한국 가톨릭 미술의 대표적인 여성 조각가 임송자(林松子, 리타)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 글은 2017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주관한 한국 가톨릭 미술가 동영상 기록 작업을 진행하며 인터뷰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하였다.





임송자는 1940년 서울 출생으로 1963년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1976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그는 로마 미술아카데미 조소과와 로마 시립 장식미술학교 벽화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조폐국 메달학교를 졸업했다. 1963년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서울 가회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그는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한국 가톨릭교회에 주요 작품들을 남겼고 1999년 제4회 가톨릭 미술상 본상(조각부문)을 받았다. 이후 2000년 제14회 김세중 미술상 본상, 2004년 이중섭 미술상, 2006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조각가로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또한 1982~2006년 중앙대학교 조소학과 교수를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임 작가는 이탈리아 유학 시절 접한 현대 성미술 작업들에 매료되어 교회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귀국 후 직접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성미술 작품은 가톨릭대학교 신부들의 요청으로 1980년대에 제작한 김대건 신부상이다. 이후 1984년 한국 가톨릭 200주년을 맞아 부조 흉상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제작했고, ‘103위 성인 기념 메달’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같은 해 1984년 103위 성인 시성식을 맞아 작업한 서울 서소문 순교자 현양탑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서소문 순교자 현양탑은 서소문성지 조성 사업의 하나로 1984년 12월 22일 완성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1996년 서울시 자원재활용처리장 시설공사를 위해 철거됐다가 1998년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십자가의 길 기도 동산에 다시 설치됐다. 원래는 위가 뾰족한 삼각형 형태였으나 재설치되는 과정에서 상단부가 생략되어 원작의 모습은 유지되지 못하였다.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3개의 삼각기둥으로 이루어진 서소문 순교자 현양탑은 신자들이 탑을 돌며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제단과 탑 전면에 놓인 부조들 모두 낮은 높이로 계획되었다. 작품 전면에 눈높이에 맞게 제작된 총 7점의 부조가 설치되었는데 중앙에 3점, 좌우 양옆에 각각 2점으로 이루어진 부조에는 박해시대 선조들의 신앙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왼쪽부터 작품의 주제를 살펴보면 △이승훈이 이벽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 △명도회의 교리 공부 △서소문에서 순교한 동정녀 성 김효임 골룸바와 김효주 아녜스 자매 △순교자들의 고문 장면 △어머니와 아기가 생이별하는 모습 △주문모 야고보 신부의 고해성사 집전 △옹기촌에서 묵주기도 하는 신자들 등 총 일곱 장면이 사실적이면서도 손자국이 강조된 질감을 통해 작가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파토스적인 표현으로 완성되었다.

이상적인 비례와 이목구비로 표현된 것이 아닌 우리 한국인의 모습을 담고 있는 임송자의 작품은 위압적이지 않은 친근함과 편안함을 전해준다. 작가의 손자국과 함께 형성된 작품 표면은 마치 물감을 듬뿍 묻힌 붓으로 층을 쌓아올려 마티에르를 강조한 한 폭의 회화와도 같이 다가온다. 상세하지만 생략되어 있고, 브론즈의 견고함보다는 흙의 연한 질감을 느끼게 하는 그의 작품은 조각과 회화의 경계에 놓인 또 하나의 새로운 경지를 드러내며 보는 이의 사고를 자유롭게 해주고 있는 듯하다.

임송자는 성미술 작업에서 추구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보는 사람들이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성당 건축에 맞게 군더더기 없는 최소한의 성상이 놓여야겠고, 제 작품과 더불어 마음이 정화되고 기도하고 머무르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이루고 싶은 바람입니다. 그래서 성상을 표현함에 있어 지나치게 위압감을 주거나 심각하게 표현해 무겁게 느껴지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안양 중앙성당의 ‘부활 예수상’은 이와 같은 임 작가의 작업 철학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단 십자가를 대신해 세워진 부활 예수상은 건축 구조 안에 표현된 좌도, 우도 십자가와 함께 인간의 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리고 부활의 기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임 작가는 부활 예수상을 제작하면서 성당 건축 내에 성상이 통일감 있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실제 크기의 작품 모형을 성당에 직접 배치해보면서 지금의 설치 방식을 찾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제대 왼쪽 옆에 6m 높이의 좌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부활 예수상을 올린 것이다. 이와 같은 설치로 3m가량 되는 성상이 제대 높이만큼 들어 올려지면서 시선이 성전의 중심인 제대를 향해 집중될 수 있도록 했다. 마치 춤을 추고 있는 듯한 부활 예수상은 임 작가가 추구했던 바와 같이 성전 내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임송자는 이 밖에도 서울 가회동성당의 십자고상과 성모상, 서울 가좌동성당(현 가재울성당)의 십자고상, 강릉 초당성당의 십자가의 길 14처 등 국내외 성당 여러 곳에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런데 그의 여러 작품 중 작가의 본 의도와 달리 작품이 변형된 사례들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모든 성미술 작업이 그러하겠지만, 정성을 다한 자신의 작품이 본 모습이 아닌 채로 변형되거나 재설치된 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상처를 안고 있다. 얼마 전 수원교구의 한 성당에 설치된 임 작가의 십자가의 길 14처를 촬영해 작가에게 보냈었는데 본래 색과 완전히 달라진 작품에 크게 상처를 받는 것을 보고 사진을 보내지 말 걸 하고 후회했던 적이 있다. 사실 그 성당은 축성 후 필자가 보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고 많은 부분이 새롭게 교체되어 있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상단부가 잘려나가고 십자가의 위치도 바뀐 서소문성지 현양탑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가들에게는 마치 팔다리가 부러진 자신의 분신을 대하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한국 가톨릭 성미술에 대한 글쓰기 작업을 통해 작품을 계획하고, 설치하고 또다시 살린다는 것이 진정 어떠한 의미이며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할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오늘 임송자 작가의 글로 졸고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교회 미술을 위한 여성 원로 미술가들의 열정과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 드린다. 더불어 앞으로 성전에 설치된 성미술품들이 작가의 본 의도대로 제자리에서 오래도록 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정수경 교수(가타리나, 인천가톨릭대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