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엄하신 성모님이 웃으시자 아기 예수님도 환한 미소
▲ 오타비아노 넬리, ‘하느님의 어머니’, 1407~1422, 프레스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이탈리아
▲ ‘달콤한 성모님의 입맞춤’, 필로테오스 수도원, 아토스, 그리스. |
▲ 피에트로 로렌제티, ‘성모자와 성 프란치스코, 요한 세례자’, 1315~1319, 프레스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이탈리아. |
성모 마리아가 드디어 웃으십니다. 덩달아 아기 예수도 재롱을 피웁니다. 그리스도교가 생긴 지 1000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성모자를 표현한 성미술 도상(圖像)에 정감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의 성미술 도상은 예수님의 거룩한 신성을 드러내는 데에 치우쳐 성모자를 초현실적인 존엄한 존재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로마제국 시대 황제와 황후의 초상처럼 우아하고 고상하지만,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는 근엄한 모습으로 그려졌지요.
인간미 넘치는 표정 담기 시작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표현한 성모자상에 인간미 넘치는 표정이 담기기 시작한 것은 9세기 말부터라고 합니다. 물론 미술사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지만, 성화상논쟁(8~9세기)이 끝난 후 콘스탄티노플에서 처음으로 표정이 담긴 성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현재 그리스 아토스섬 필로테오스 수도원에 있는 ‘글리코필루사’(Γλυκοψιλουσα) 입니다. 우리말로 ‘달콤한 입맞춤의 성모’입니다. ‘자비의 성모’라는 뜻의 ‘판아기아 엘레우사’(Παναγια Ελεουσα)라고도 하는데 ‘달콤한 입맞춤의 성모’라는 이름이 더 정겹고 매력적입니다.
성모님은 양팔로 아기 예수를 포근하게 감싸 안고 주님의 뺨에 입을 맞추십니다. 아기 예수도 성모님의 달콤한 입맞춤이 좋은지 어머니 품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긴 채 왼손으로 엄마 턱을 어루만지며 귀여운 표정을 짓습니다. 성모님의 모성애뿐 아니라 아기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물씬 드러나는 그림입니다.
이전의 도상과는 확연히 다른 인간미 넘치는 이러한 도상이 생긴 까닭이 있습니다. 6세기부터 성화상 공경이 대중 신심으로 발전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신자들 사이에 미신 행위가 생깁니다. 그 도가 지나쳐 결국 동로마제국의 레오 3세(713~741) 황제는 726년 법으로 성화상 공경을 금지합니다. 이후 100년 가까이 신학자들 사이에서 “성경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 했는데 하느님을 형상화할 수 있느냐?” “인간이 그린 그림을 어떻게 공경할 수 있느냐?”며 논쟁을 벌였고, 과격한 이들은 성화상을 파괴했습니다. 그러다 843년 열린 제2차 니체아 공의회는 “성화상은 단순히 시각 도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사람에게 전해지는 통로 역할도 하는 성사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하느님의 신비를 담고 있는 기록”이라고 선언하고, 성화상 공경을 허용합니다.
이 결정으로 성미술은 전성기를 누립니다. 도상의 표현 방법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성모 마리아의 모성을 숨김없이 드러낼 만큼 자유롭고 성숙해졌습니다. 성미술 안에서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이 온전히 표현되면서 그제야 인간의 미적 가치와 하느님의 신비를 결합하는 새로운 끈을 찾게 된 것입니다.
서방 교회에서 성모님을 주제로 한 성미술 도상은 13세기부터 전성기를 맞습니다. 1253년 봉헌된 이탈리아 아시시 성프란치스코대성당은 성미술의 보고입니다. 이 성당에는 성모자상의 전통 이미지와 풍부한 표정을 담은 도상들이 벽면 곳곳에 장식돼 있습니다.
먼저 오타비아노 넬리의 작품입니다. 1407~1422년에 그려진 ‘하느님의 어머니’ 도상으로 옥좌에 앉아 있는 존엄한 성모님의 모습과 아기 예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백합은 ‘평생 동정녀’이심을 상징합니다. 또 아기 예수의 왼손에 앉아 있는 새는 ‘제2의 그리스도’로 불리고 있는 성 프란치스코를 연상시킵니다.
다음으로, 피에트로 로렌제티의 작품입니다. 1315~1319년에 그려진 ‘성모자와 성 프란치스코, 요한 세례자’ 도상입니다. 성모님 왼편에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기 예수 옆에 요한 세례자가 서 있는데 성모자의 표정을 읽기 위해 확대했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어머니는 프란치스코와 세례자 요한 중 누구를 더 사랑하시느냐”고 묻자 당황한 성모께서 눈을 크게 뜨고 말씀을 하지 못한 채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당신 옆에 서 있는 성 프란치스코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라 합니다.
이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친밀한 관계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몸을 성모님을 향해 앞으로 숙인 채 더없는 사랑의 눈으로 성모를 바라보고 말을 걸고 있습니다. 성모님 또한 어린 자식의 당돌한 질문에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지극히 인간적인 표현으로 그 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이끄는 성모 마리아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계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려운 교회 용어로 ‘중재자이신 마리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일 우리가 성모님께 “저희 죄인을 위해 빌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그 이유를 이 친밀한 성모자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성애와 인간미 가득한 성모 마리아의 성화는 우리를 그리스도께 이끕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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