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과감하게 일주일 동안 휴가를 내고 아이들의 학교에도 양해를 구한 뒤 우리 가족은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로 떠났다. 성모님을 찾아뵙기 위해서였다. 순례를 결심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지만, 막상 출발할 때는 정말로 어머니를 만나러 고향에 내려가는 듯 가벼운 마음이었다.
멕시코시티에는 교황청이 공식 인정한 첫 번째 성모 발현지가 있다. 1531년 당시 멕시코는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곳 원주민들은 신을 위해 건강한 젊은이들, 심지어 어린이까지 희생하는 끔찍한 ‘인신공양’이 이뤄지던 마야 문명과 아즈텍 문명의 영향 아래 짙은 토속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또 당시 스페인인과 원주민 혼혈은 차별받고 핍박받았으며, 이들에 대한 낙태도 수없이 이뤄졌다. 스페인 선교사들의 노력에도 가톨릭 신앙이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리기는 매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신앙을 받아들인 신심 깊은 원주민들이 있었는데, 후안 디에고도 그중 하나였다.
후안 디에고가 미사에 참여하러 매일 걷던 길, 테페약 언덕에서 스스로를 ‘과달루페의 성모’라고 소개하는 한 여인이 나타났다. 스페인과 원주민 혼혈 여성의 모습으로 인디오들의 복장을 입고, 예수님을 잉태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성모님이었다. 성모님은 후안 디에고에게 그 자리에 성당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셨다. 성모님은 그에게 언덕에 피어 있는 장미꽃을 따서 가슴에 품고 주교님께 가라고 하셨다. 후안 디에고가 주교님 앞에서 품고 있던 장미꽃을 내려놓았는데, 놀랍게도 주교의 망토(틸마)에 이미 성모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깜짝 놀란 주교는 이를 보고 그곳에 성당을 지었으며, 그곳에 성화를 보관하였다.
이때 지어진 성당에 이 성화가 지금까지도 온전히 보존돼 있다. 성화와 관련된 놀라운 이야기도 참 많다. 원래 틸마라는 옷감은 보통 수명이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썩어 사라지는데, 5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손상 없이 보존되고 있는 것도 놀랍고, 그림에 담긴 수많은 상징과 의미들도 참으로 신비롭다. 하지만 성모님 발현 이후 불과 10년도 안 되는 기간 약 800만 명의 원주민들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 아니까?
성모님은 당시 가장 차별받고 고통받던 이들의 모습으로 그들을 위로하시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성모님께서는 신에게 목숨을 내어놓아야만 한다고 믿던 그들에게 나타나 친히 가르쳐주신 것이다. “하느님은 오히려 그분이 너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분이시란다”라고 말이다.
과달루페 대성당에서 본 성화와 성당도 아름다웠지만, 이곳 순례지에서 정작 내 마음을 가장 깊이 울린 것은 멕시코 전역에서 찾아온 수많은 순례객이었다. 그들은 노숙을 마다하지 않고 성모님을 뵙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왔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평생 이곳에서 성모님을 한 번이라도 뵙는 것이 소원인 가난한 이들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들의 눈망울에서 예수님과 성모님을 향한 큰 사랑을 느꼈다.
순례 중 동양인인 우리가 낯설고 반가웠던지, 한 노 순례객이 우리를 안아주며 우리 둘째 아이 뺨에 뽀뽀를 해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 뺨에 입을 맞추었다. 어쩐지 마음이 뭉클했다. 그분을 빌려 우리에게 성모님이 다가오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를 마치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당신이 벌써 그립습니다. 항상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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