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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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어려운 말씀도 쉽게… 신자들 마음에 신앙의 싹 틔운 목자

참 빛 사랑 2022. 3. 7. 19:58

제5대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의 삶과 신앙

▲ 1989년 2월 13일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사제서품식을 마치고 새 신부가 돼 분향하는 김종수 주교.
 
 

지난 2월 26일, 제5대 대전교구장에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가 임명됐다. 토요일인 이날 오후 7시 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봉헌된 미사 직후 한정현 보좌 주교가 “한없이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우리 대전교구에 큰 선물을 허락하셨다”며 김 주교의 대전교구장 주교 임명 사실을 공표하자 전 교구 공동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김 주교는 특히 대흥동본당 출신이어서 교구장 주교를 배출한 대흥동본당 신자들의 기쁨은 더 컸다. 다음은 김 주교의 삶과 신앙, 교구 공동체의 축하인사와 바람이다.



합리적이면서도 따뜻한 성품을 지닌 목자


‘내포 교회’를 이끌게 될 신임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를 바라보는 교회공동체의 눈길은 따뜻하다. 성서학자로 일생을 살아왔지만, ‘어려운 말씀도 쉽게 풀어주는’ 목자였기에 김 주교에 대한 교구 공동체의 신망은 두텁다. 본당 신부로, 유학생 신부로, 교수 신부로, 보좌 주교로 살아온 34년의 삶은 복음 말씀에 깊이를, 넓이를 더해준 세월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성서학 강의는 신학생들, 교구 신자들 사이에서 ‘눈높이’ 명강의로 명성이 자자하다. 2009년 주교 수품 뒤로는 교구 총대리로 교구장을 보좌해야 했기에 강의를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드문드문 미사 강론을 통해, 또 특강을 통해 드러나는 성경에 대한 그의 해박한 해설은 신자들 마음 밭에 단단한 신앙의 씨앗을 뿌렸고 그 싹을 틔웠다. 특히 그는 복음 말씀을 말씀으로만 끝내지 않고 체험과 함께 풀어냄으로써 믿음과 실천, 곧 신행(信行)이 일치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줬다. 그래서 주위 동료나 후배 사제들, 신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고, 이미 신학생 시절부터 동기나 후배 신학생들의 영적 조언자 또는 신앙적 동반자로 유명했다.

김 주교가 부제일 때 대신학교에 들어갔던 한광석(해미성지 전담) 신부는 “신앙은 물론 성경, 과학, 사회 분야에 이르는 학문적 깊이나 해박함도 뛰어나시지만, 어려운 성경을 열심한 신자들이 알아듣도록 신자들 눈높이에 맞춰 풀어주는 노력이 특히 돋보였다”면서 “학문적으로도인품으로도 존경받는 주교님께서 교구장 주교가 되셔서 너무 기쁘고 반갑고 행복하다”고 전했다.


▲ 2009년 3월 김종수 주교가 자신의 주교서품식에서 유흥식 주교에게 안수를 받고 있다.



군 복무 중 말씀에 푹 빠져 사제의 길로


이렇게 일생을 한결같이 ‘사제답게’ 산 김 주교는 1956년 대전 태생이다. 1989년 선종한 부친 김동억(요셉)씨의 고향은 경북 영일군이지만, 그는 대전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출신 본당도 대흥동본당이다. 형제자매는 3남 4녀로, 7남매 중 여섯째지만, 형제 중에선 막내다. 그의 집안을 가톨릭으로 이끈 건 1962년에 선종한 모친 김양순(마리아)씨로, 어머니는 김 주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위암으로 선종, 김 주교는 큰 누나 김갑수(엘리사벳)씨 품에서 자라나야 했다. 대전중ㆍ고 시절에도 농구와 탁구, 야구 등 스포츠를 좋아했고, 학업성적도 뛰어나 서울대 국사학과에 들어가 1978년 대학을 졸업하고 4년간 공군 학사장교로 복무한 뒤 같은 대학원까지 마쳤다.

김 주교가 회심하게 된 건 군 복무가 계기였다. 복무 중 틈틈이 성경공부를 하던 그는 말씀에 푹 빠졌다가 나오는 것 같은 체험을 했다고 한다. 학사장교로 복무하는 한편 대흥동본당에 4명밖에 없던 중ㆍ고등부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고, 성서공부에도 매진했다. 그 덕에 대학원을 졸업한 뒤 대신학교로 자신의 삶을 선회했다.

당시 김 주교가 중등부 주일학교 교사로 있을 때 주일학교 학생이었던 김경란(마리아) 조각가는 “중3 때 솔뫼성지로 피정을 갔는데, 그때 교사였던 김 주교님이 주신 ‘빛과 소금’이라는 묵상 주제는 훗날 제가 작업을 하는 데 평생의 모티브가 됐고 파리1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그 주제였다”면서 “주일학교 교사로 있으면서도 그렇게 학생들에게 평생 가슴에 남는 묵상 주제를 주셨던 것처럼 교구 공동체도 밝게 비춰주는 목자가 되시기를 바란다”고 기도했다. 김광태(도미니코) 대흥동본당 사목회장도 “교구민 대부분이 바라던 김종수 주교님께서 교구장이 되셔서 정말 기쁘고 반갑다”면서 “앞으로도 성령의 인도에 따라 교구장 역할을 충실히 해주시리라 믿는다”고 기도했다.


▲ 2017년 12월 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개막한 대전교구 시노드 본회의 개막 미사에서 김종수 주교가 성체를 분배하고 있다.



▲ 지난 2016년 11월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주최로 열린 조선대목구 성모성심회 설립 170주년 기념 학술발표회에서 조선 교회 봉헌과 성모성심회 설립 관련 주제를 설명하는 김종수 주교.



내포 교회, 새 교구장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

1989년에 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한 김 주교는 그해 2월 13일 사제품을 받았다. 수품성구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이다.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논산 부창동본당에서 보좌로 사목한 뒤 유학을 떠나 1991년 4월부터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공부하고 ‘예레미야서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임 사제로 산 해미본당에서의 사목도 김 주교에게는 각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본당 사목은 보좌 시절을 포함해 3년 6개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전가톨릭대 교수로, 총장으로 산 13년 세월 동안 그는 동료 신부들한테는 신망받는 사제였고, 신학생들에게는 존경받는 사제였다. 사진첩을 꺼내놓고 동료 교수 신부나 신학생들 얼굴을 바라보며 짧은 기도 바치기를 좋아했고, 그 기도는 사제로서 그의 삶에 큰 힘이 됐다. 1997년 대전가톨릭대에 부임한 김 주교는 구약입문이나 모세오경, 예언서 등 구약 전반을 강의했고 사제양성에 오롯이 헌신했다.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바오로딸, 2004년), 「거룩하신 하느님, 질투하시는 하느님」(바오로딸, 2007년) 등 구약성경을 구세사적 관점에서 해설해준 책은 당시에 썼고, 성모님에 대한 교의와 교회의 가르침을 담은 「믿는 이들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톨릭출판사, 2016년)는 보좌주교로 사목하면서 틈틈이 집필했다.

2009년 주교로 임명된 이후에는 교구장을 보좌하는 데만 전심전력했다. 교구에서도 교구 설정 70주년을 앞두고 개최된 교구 시노드 등을 통해 ‘드러나지 않게’ 교구장을 보좌하는 데 힘썼고, 사제나 신자들에게 영적 양식을 먹이는 데 힘을 쏟았다. 주교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10월 복음화(현 복음 선교)위원회 위원장으로, 2010년 3월부터 전례위원회 위원장으로, 2018년 3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성서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선교와 전례, 말씀 사목에만 진력했다. 그야말로 ‘신앙의 기본’에 충실했고, 그럼으로써 신자들이 선교의 삶을 살고, 전례에 충실하고, 생활 속에서 말씀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줬다.

맹동술(시몬) 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장은 “김종수 주교님께서 새 교구장 주교님이 되셨다는 뉴스는 ‘단비를 맞는 듯한’ 기쁜 소식이었다”며 “이제 새로운 교구장 주교님이 되셨으니, 400명 가까운 사제, 전 교구민과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으로 소통해 주시고, 특히 평신도들이 성화 되는 공동체로 만들어주시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서원자(클라라) 교구 여성연합회장도 “깊은 영성과 겸덕(謙德)을 지니신 주교님께서 새 교구장이 되신 걸 축하하고,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주교님께 필요한 은혜를 풍성히 내려주시길 쉼없는 기도로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