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 대비해 고해성사
9월 18일 바다가 드디어 잠잠해졌다. 순풍도 불었다. 라파엘호는 예인선과 함께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도 라파엘호에 함께 탔다. 항해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9월 21일 새벽 4시부터 풍랑이 일더니 집채만 한 높은 파도가 라파엘호의 돛을 갈랐다. 모두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배를 꽉 붙잡고 버텨야만 했다. 페레올 주교는 중국 배를 향해 “우리를 태워달라”고 소리쳤다. 위험을 감지한 예인선 선원들은 라파엘호 탑승자들을 구하기 위해 배를 가까이 대려 애를 썼다. 그때 갑자기 두 배를 묶고 있던 굵은 밧줄이 뚝 끊어졌다. 두 배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예인선은 배를 잇기 위해 세 차례나 라파엘호 가까이 와서 구명줄을 던졌으나 물살이 거세 조선 신자들은 그 밧줄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두 배는 영영 헤어지고 말았다.
뱃사람 출신 신자들은 라파엘호 침몰을 막기 위해 두 돛대를 잘랐다. 얼마 안 가 키조차 파도에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다. 또 한 번 라파엘호를 탄 신자들은 조난을 당했다.
“험한 바다에서 돛대도 없이 키도 없이 사방에서 들어오는 물을 계속 퍼내야 하는 우리에겐 하느님에 대한 희망 외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습니다. 이 망망대해 가운데서 무엇을 한단 말입니까!”(다블뤼 신부의 앞의 편지 중에서) 김대건 신부 일행은 눈에 띄는 모든 배에 “우리를 산동까지 데려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이들을 도우러 다가온 배는 단 한 척도 없었다. 일행은 페레올 주교의 지시에 따라 죽음을 대비해 모두 고해성사를 했다.
바람따라 해류따라 도착한 곳
밤이 되자 마침내 폭풍우가 누그러졌다. 다음 날 아침에는 풍랑도 그쳤다. 신자들은 기운을 차려 자른 돛을 다시 세우고 키도 새로 만들었다. 하루 반이 걸렸다. 다행히 사흘간 날씨가 평온해 모든 게 정상화됐다.
9월 25일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약간 거셌지만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순풍이었다. 26일 밤 3시께 별빛 너머로 아슴푸레 섬 하나가 보였다. 섬을 발견한 이가 흥분해 모두를 깨우며 살았다고 외쳤다. 신자들은 모두 “한양에서 가까운 조선 땅”이라고 했다. 이 소리에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는 즉시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서양 구두는 바다에 던져 버렸고 의심받을만한 모든 것을 배에서 치웠다.
그러나 바람은 라파엘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역풍이 다시 불어 라파엘호를 남쪽으로 떠밀어냈다. 속절없이 라파엘호는 물 흐르는 데로 실려가 작은 섬에 도착했다. 9월 28일 섬에 내려 주민들을 만나고 돌아온 한 신자는 “이곳이 제주도”라고 모두에게 알렸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