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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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제9회 신앙체험수기] 특별상 /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

참 빛 사랑 2022. 2. 25. 17:37

이춘자 아녜스 수녀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 일러스트=최단비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 과정이다. 2016년부터 5년 동안 안동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하는 동안 많은 분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떠나신 한 분 한 분은 나에게 큰 스승이셨다. 봉사할 기회를 주신 하느님과 수도 공동체에 감사드린다.

호스피스 병동 봉사 도움을 요청받고 매주 2회, 겁 없이 뛰어들었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덕분에 다양한 종파의 사람들을 만나 인생 공부를 많이 하였다.

호스피스 병동 리모델링 공사 기간에 말기 암 환자 명단을 받아서 의료사회복지사 한 명과 함께 중환자실, 일반병실 등을 순회하며 기도와 상담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호스피스 완화 병동에서 염주를 손에 든 환자분을 만났다.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며 “부처님께 기도해 드릴까요?” 했더니, 반색하며 좋아하셨다. 불교 용어로 “자비로우신 부처님이시여, 여기 앓고 계시는 불자를 굽어보시어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고 기도를 마치니, 어르신이 ‘아멘’ 하고 답을 하셨다. 깜짝 놀라 웃으면서 “어르신 왜 아멘 하셨어요?” 하고 물으니 “수녀님이 저를 위하여 부처님께 기도해 주시는데 저도 아멘 해야 예의지요” 하며 웃으셨다. 이분을 떠올릴 때마다 깊은 배려에 미소가 흘러나온다.

그 후에도 종종 불자들을 만나면 불교식 기도를 해 드린다. 어느 날 봉사자와 함께 가까운 사찰, 대원사를 방문하여 등안 주지 스님을 찾아뵙고 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에 봉사를 부탁드렸다. 마지막 길에 간절히 스님을 만나고 싶어 해도 종교가 다른 자식의 반대로 무산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불자들은 아무래도 수녀보다는 스님이 오셔서 목탁 소리와 함께 염불해 드리면 심신의 안정을 더 찾을 것 같았다. 그 후 스님은 담당 복지사가 전화할 때마다 방문하여 기도해 주셨다.

한 번은 자살 시도를 한 50대 초반의 젊고 키가 크신 분이 입원하였다. 조심스레 다가가서 말을 건네며 기도해 드리니 “저 같은 죄인이 세례를 받아도 됩니까?” 하였다. 약 3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곧이어 어머니도 세상을 뜨셨다. 그리고 2년 전에는 정신과 병원에 약 타러 간다던 아내가 안동댐 부근에서 의문사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술로 세월을 보내고 줄담배를 피웠다. 2016년 말 다리가 아파 병원에 갔다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으며, 수술도 방사선치료도 가망 없다고 하였다. 두 달 후면 죽는다는 진단에, 9남매 중 둘째인 그는 형제들에게 폐암 말기라는 소식을 알리고 죽기로 했다. 형제들이 달려와 맛있는 것 사주며 호텔에서 하룻밤 함께 한 후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시켜주었다고 하였다.

입원 후에는 형제들 발길이 뜸했다. 담배도 피우고 주변도 지저분했으나 봉사자와 함께 청소해 주고 세례받기를 원하는 이 환자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도와드렸다. 간단한 교리를 설명해 주며 환자의 말을 들어주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부모와 가족 속을 썩인 이야기를 하면서 “수녀님, 이 죄인이 세례받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교리서를 주면서 주모경을 읽으며 기도하도록 부탁했다.

그날부터 심한 통증에도 기도문을 정성껏 필사하기 시작하여 깜짝 놀랐다. 주모경을 외우면 좋다는 봉사자들의 말에 잘 외워지지 않아 공책을 구해 달라고 해서 필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암이 다리와 발까지 전이가 되어 걷기에 불편하였고 발이 퉁퉁 부어 신발도 신을 수 없었다. 그런데 열심히 노트에 기도문을 적었더니 어느 날 다리가 아프지 않고 신도 신을 수 있다며 주일에 성당에 가고 싶다고 하였다. 주치의 선생님께 허락받고 봉사자와 함께 3월 5일 목성동성당에 가서 주일 미사에 참여하여 이희정 주임 신부님께 인사도 드리고 왔다.

그 후 노트 3권에 기도문 필사한 것을 이희정 신부님께 보여 드렸더니 신부님께서도 감동하시고 세례를 주기로 하셨다.

3월 29일 세례식 날, 수녀원 뜰 안에 곱게 핀 개나리로 호스피스 병동을 장식하였고, 신자인 남동생도 외지에서 참석하였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의료원 원장님과 호스피스 센터장님도 참석하신 잊을 수 없는 세례식이었다. 봉사자들이 꽃다발을 만들고 과일, 식혜까지 준비하였다. 많은 신자가 참석한 성스러운 세례식을 보고, 다른 환우들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요셉 형제님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는 다시 태어난 마음으로 성경을 필사하며 간절히 기도한 덕분인지 병이 다 나은 것 같다며 무척 기뻐했다. 그 후 계속 성경 필사에 온 힘을 다 쏟더니 어느 날은 시골집에 봄옷을 가지러 가고 싶다 하였다. 주치의 호스피스센터장님께 허락받기 위해 말씀드리니 컴퓨터로 환자의 가슴 사진을 보여 주시면서 “수녀님! 폐가 다 말라버렸는데 어떻게 숨을 쉬는지 저는 종교가 없지만, 하느님 기적인 것 같으시네요. 수녀님이 함께 가시니 허락하지요.”

2017년 5월 1일, 두 시간이 걸리는 시골집에 봉사자이신 요셉씨 대부님 차 편으로 갔다. 총 8가구가 사는 시골 외딴 산 중턱 동네로 가면서 요셉씨는 강에서 고기 잡고 뛰어놀던 어릴 적 추억이며 공부는 못했지만 달리기는 1등 했다는 등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경치 좋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와이셔츠 만드는 공장에서 잘 나가던 중 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배우고 대를 이으라 하셨다. 안 내려오겠다 하니 내려오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어버리겠다 하고 형제들도 권해서 시골에 내려왔는데 아버지는 6개월 만에 빚만 남겨 두고 돌아가시고…. 그래서 농사짓느라 고생했던 이야기며 부인과 결혼한 사연이며 슬하에 자녀는 없었지만, 아내와 행복했었다는 얘기도 했다. 부인의 의문사 후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낸 이야기 등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삶을 신부님께 고해성사하듯 어린아이가 엄마한테 자기 잘못을 고백하듯 마음속 말을 다 쏟아내었다.

집에 도착하여 이웃 친척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니 “아이고 형○○이가 살아서 왔구나! 감사하기도!” 하시며 어르신들이 형제님의 손을 잡고 기뻐하였다. 집안을 둘러보며 “수녀님 휴가 때 우리 집에 쉬어가시라”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요셉씨는 침대에 앉아 노트에 기도문과 성경을 8권 필사했다. 주일에는 목성동성당에 가서 미사와 첫 고해성사를 보고 행복해하며 “수녀님, 세례받은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요?” 하길래 “저를 위하여 요셉 형제님이 기도해 주시면 됩니다”라고 하였더니 침대에 꿇어앉으시더니 “하느님, 수녀님 제발 아프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아멘” 하고 기도해 주었다.

며칠 후 “요셉님 기도 덕분에 제가 아프지 않은 것 같아요” 했더니 웃으면서 좋아하였다. 기도할 때는 항상 하느님께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부탁을 하라고 설명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요셉 형제님의 기도 덕분인지 주님께서 나의 건강을 지켜 주신다는 믿음이 든다. 그리고 중요한 어떤 것을 결정하기 위하여 식별 기도를 할 때 종종 요셉 형제님께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세례의 은총 때문일까, 그는 건강이 호전되어 두 달을 넘겼다. 호스피스 센터에 입원한 지 두 달이 되면 환자 상태에 따라 일단 퇴원을 해야 한다. 이분은 믿음 탓인지 두 번이나 잠시 다른 병원에 입원했다가 와서는 “여기가 내 집 같아요” 하면서 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을 신뢰하고 편안해 하여 주위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하였다. 자기보다 늦게 입원한 환우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믿음 덕분이라고 하였다.

세례를 받은 후에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며 대부님, 의료진, 봉사자들을 위하여 떠나는 날까지 수시로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후 몇 차례 주일 미사 참여와 고해성사도 보더니 봉사자들 기도 속에서 병자성사를 받은 후 7월 20일 천국으로 가셨다.

어느 날은 하루에 세 분이나 임종하여 눈물로 기도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 분의 영혼이 하느님 곁으로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느낌을 받은 그 날, 슬픔에 슬픔이 겹친 하루였지만 모두 편안히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니 한 편으론 참 감사하고 뿌듯한 마음이었다.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을 하기 위하여 의료원 입구에 현수막, 홈페이지, 안동시청 까치 소식, 라디오 등에 공지하였으나 봉사자가 접수되지 않았다. 수간호사님이 걱정하며 도와달라고 해서 안동교구 주보에 공지하였더니 시내 5개 성당에서 금방 봉사자들이 모여 교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봉사자 몇 분이 종교가 다른 환자분들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느냐고 몇 번씩이나 물었다. 그래서 가톨릭 호스피스 병동 기도문을 구해서 타 종교의 환자를 위한 기도문을 삽입한 ‘병자방문 기도서’를 안동교구청에 부탁드렸더니 사목국에서 발간해 주었다.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호칭하여 기도해 드렸더니 좋아하셨다.


▲ 일러스트=최단비



더운 여름 2018년 8월 초, 40대 후반의 젊은 자매님이 대장암으로 입원하였다. 인사하면서 원하시면 봉사자와 함께 기도해 드리겠다고 했더니 고맙다 하였다. 신앙에 관심이 있다 하여 조금씩 간단한 교리를 설명하여 드렸다. 어느 날 남편이 빵을 사 와서 일회용 접시에 담고 있었다. “왜 빵을 여러 접시에 담으세요?” 물었더니 아내가 빵 먹고 싶다 하여 병실에 계시는 분들과 나누어 먹으려고 담는 중이라고 하여서 마음이 참 따뜻한 분이라고 생각하였다.

며칠 후 1인실로 옮겨서 더 부담 없이 교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계속 남편이 병간호하기에 “직장은 어떻게 하시구요?” 했더니 남은 시간 아내와 함께 있고 싶어 몇 달 휴직을 신청했다고 하였다. 지극정성으로 24시간 병간호하는 모습이 참 대단하다 싶었다. 안타깝게도 자매님은 암세포가 간까지 전이되어 간성혼수로 얼굴과 눈까지 황달이 심했으며 하루가 다르게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았다. 교리를 설명하기도 죄송해서 간단한 교리 책을 드리며 남편보고 읽어드리라고 했다. 기본 교리를 다 받아들이고 믿으며 세례받고 싶다고 하여 봉사자 중에서 대모를 정한 후 공한영 신부님께 부탁드렸다. 신부님은 8월 24일 임○숙 자매를 베로니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고 병자성사도 함께 정성을 다해 주셔서 환자도 기뻐하였다. 신부님도 남편에게 기도문을 옆에서 계속 읽어드리라고 말씀해 주셨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 읊는다더니 어느 날 남편이 주모경을 다 외워 놀라기도 하였다. 건강상태가 좀 좋아지는가 싶더니 또 간성혼수가 오고 빈혈이 심해서 수혈을 하고 나면 눈을 뜨고, 또 며칠 지나면 혼수상태가 되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정말로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섬기며 사랑하는 남편 모습에 감동했다.

베로니카씨는 항상 봉사자들을 반기며 컨디션이 좋을 때는 말을 잘하였다. 친정어머니 암 투병에 강릉에서 아산병원으로 모시고 다니느라 아이도 유산하게 되었다며 남편한테 무척 미안하다고 하였다. 어머니께서 공기 좋은 시골에 살고 싶어 하셔서 안동 와룡에 집을 짓고 이사를 왔으나, 얼마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친정아버지도 안동에 모셔왔다고 한다.

어머니가 떠나신 후 본인이 또 아프게 되었다며 남편한테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방문해 편안히 선종하시도록 마음 모아 기도해 드렸다.

어느 날 남편이 잠시 급한 볼일을 보러 나간다고 하여 내가 베로니카씨 옆에 두어 시간 함께 있었다. 말기 암의 큰 고통을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기쁨으로 이겨 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열이 나면 입에 얼음을 넣어달라며 남편을 찾다가 통증이 없을 때는 그저 감사하다며 몇 번이고 마음을 표시했다.

내가 가정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김○동 형제님께 집이 인천인데 혹시나 임종하게 되면 휴가 미루고 내려오겠으니 전화하라고 했다. 3시간 버스로 인천 오빠 집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연락이 왔다. 아침 회진 때 주치의가 오늘을 넘기기 어려우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는 메시지였다. 곧바로 버스표를 바꾸어 안동으로 내려오는 중에 베로니카 자매가 선종하였다는 부고를 들었다. 잠시 기도 후 곧바로 공한영 신부님과 선종 봉사자 회장님과 봉사자들에게 공지하였다. 안동의료원에서 장례 미사를 봉헌하고 베로니카 자매를 교구 봉안 경당에 안치할 때 함께 갈 수 있어서 감사하였다.

눈물로 부인을 떠나보낸 남편은 곧바로 교리반에 들어가서 2018년 12월 24일 성탄 밤에 빈첸시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너무 기쁘고, 감사하였다. 그리고 부탁할 때마다 운전 봉사 등 호스피스 봉사를 위해 기쁘게 도와주었다.

장인 어르신이 건강이 안 좋아 시내 복주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였다. 원장님을 찾아뵙고 매주 1회 방문 교리를 하도록 허락받았다. 3개월 동안 간단한 교리 후 어르신이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2020년 8월 20일 세례 받을 때 정상동 사목회장님과 신자들이 참석하여 함께 축하해 주었다. 빈첸시오 형제님이 장인을 자주 찾아뵙고 보호자로 잘 보살펴 의료진들이 놀랐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빈첸시오 형제님은 제일 친한 고향 친구를 교리 반에 입교 권면하고자 애를 쓰며 나에게도 기도를 부탁했다. 나도 고향 친구분을 만나 천주교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였다. 드디어 마음의 문이 열려 교리를 몇 달 배운 후 코로나 시대라 조용하게 대부님과 빈첸시오와 사목회장님 참석하에 2020년 12월 24일 다미아노 세례명으로 세례받게 되었다.

그 후 주일 미사에 종종 빈첸시오 형제와 다미아노 형제가 복사를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빈첸시오 형제는 세례 후 곧 레지오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하였다. 두 친구는 안동 정상동성당의 나누고 섬기는 ‘나섬회’에 가입하여 함께 활동하고 있다. 김○동 빈첸시오 형제는 올 12월 초에 사도들의 모후 쁘레시디움 단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2020년 6월 초 27살 젊은 대학생이 입원하였다. ○○공대 전기과 2학년에 복학을 준비하던 어느 날 다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골반 쪽에 동전만 한 것이 보이니 큰 병원에 가보라 하였다. 대학병원 등 몇 곳에서 검진결과 100만 명에 두세 명 발병하는 희귀종으로 항암치료도 방사선치료도 안 되며 종양 제거술이 치료의 전부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후 원자력병원에서 종양 수술을 시작으로 6년 동안 총 13번의 수술을 받았다. 더 이상 방안이 없자 2020년 6월 마지막으로 고향 가까운 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젊은 대학생이 입원하니 봉사자들이 그 대학생의 입원실에 다녀오면 내 자식을 보는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쳐 정말 마음이 아팠다. 기도해 주고 싶어서 숨죽이고 들어가면 시트로 얼굴을 덮어버려서 속으로만 기도하고 나오게 되었다. 신자가 아닌 어머니도 젊은 아들에 대한 절망감으로 지쳐 봉사자들에게 아들이 기분 좋을 때만 들어오게 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했다. 나는 예수님께 그 젊은이가 제발 대세라도 받고 하느님 품으로 들도록 간절히 기도하였다. 기도가 통했는지 어머니께서 아들을 위하여 수녀님이 기도해 주시면 좋겠다고 하였다. 홍○표군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치유자이신 예수님께 통증이 조절되고 마음의 평안을 주도록 간절히 기도하였다. 기도를 마치고 나니 홍군이 “수녀님, 제가 군대에서 이마에 물을 부었어요” 하였다.

깜짝 놀라 “세례받으셨어요?” 하고 묻고는 세례명이 무엇이냐고 하니 ㅂ으로 시작하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며, 전역 후 아프게 되어 성당에 한 번도 못 갔다고 했다. 세례 때 성체를 모셨느냐고 물으니 입에 무엇인가 받아먹었다고 하였다. ㅂ으로 시작되는 베드로 바오로 등을 이야기했으나 아니라고 하였다. 세례 대장을 찾기 위하여 언제 세례받았느냐고 하니 전역하기 전 추울 때라 하여 교구청에 부탁드려서 세례 대장을 찾았다. 비오! 세례 대장을 보여 주니 맞다고 하면서 감사하다고 하였다.

호스피스에 봉사해주시는 공한영 신부님께 부탁드려 경건하게 병자성사를 받도록 하였다. 봉사자들이 꽃다발과 루르드 기적수도 가져와서 치유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였다.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병자성사 때 오면 좋을 것 같았고 그를 기쁘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암 수술 후 아빠가 아들을 위하여 전원주택으로 옮겨 강아지를 키우도록 사 주었는데 늘 그 개(멍이)와 대화하고 함께 산책했다며 그 친구가 제일 보고 싶다고 하였다.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멍이 사진을 몇 장 받았다. 호스피스 복지사가 그 사진을 인화해서 비오 곁에 걸어두었더니 무척 좋아했다. 봉사자들의 기도와 축하 속에 홍비오가 신부님 기도를 받을 때 주모경을 줄줄 외워서 더욱 놀라고 감사하였다. 그 후 비오님이 선종 준비를 더 잘하도록 서울 성모병원에서 말기 암이었는데 치유가 되어 사제품을 받으신 윤성규 바오로 신부님께 부탁드려 기도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수도 공동체에서도 기도해 주었다. 멍이가 지켜보는 8월 8일 새벽에 홍비오님은 하느님 품에 안기셨다.

가족 중에 신자가 없었지만, 부모님은 비오가 하늘나라를 미리 준비했다며 대견해 했다. 비오를 위하여 장례 미사를 봉헌했고 봉사자들이 많이 참석하여 비오 부모님이 많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고향에 선산이 있지만, 부모님이 원하여 천주교 안동교구 봉안 경당에 안치했다. 기도해 주어 감사하다고 했다.

그해 가을 봉사자와 함께 군위에 사는 비오님 어머니를 방문했다. 아들 잃은 아픔을 함께 나누며 담소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어머니는 무척 반가워하시며 봉사자들을 위하여 약밥을 준비해 주었다. 잘 꾸며진 정원에 곱게 핀 코스모스와 멍이를 보니 비오를 더욱 생각나게 하여 콧잔등이 시큰하였다.

떠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달랐다.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분, 죽는 것이 억울해 고함치시는 분, 늦게나마 세례와 병자성사를 받고 편안하게 가시는 분, 오랜 냉담 후 호스피스 병동에서 고해성사를 보고 삶을 정리한 후 가볍게 죽음을 잘 맞이하시는 분도 있지만, 가족과 가슴 깊이 맺힌 응어리를 끝내 풀지 못하고 상처를 안고 가거나, 주고 가는 분 등 여러 모습을 지켜보았다. 부활을 희망하면서 모두 언젠가 우리에게 다가올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스승처럼 깨달음을 주고 갔다.

어느 날 의료원 이윤식 원장님(개신교)께서 두봉 주교님을 초청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코로나 전담 병원이 된 후 호스피스 환자와 코로나 환자는 물론 지쳐가는 직원들을 위하여 축복의 기도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두봉 주교님께 부탁드렸더니 92세의 연세에도 흔쾌히 허락하셨다. 2020년 10월 30일 두봉 주교님께서 호스피스 환우들과 코로나 병동을 순회하시며 환우들과 직원들을 위하여 간절한 기도를 해 주시고 위로와 축복의 말씀을 해 주셨다. 그 후 코로나 확산으로 현재까지 호스피스 봉사가 중단되었다. 떠나시는 분들이 편안히 눈감을 수 있도록 따뜻하게 손잡고 기도해 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가정에서나 병원에서 호스피스 의미를 알고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안동교구에는 병원전담 사목부가 없기에, 그동안 환자에 따라서 어느 성당의 신부님이시든 급하게 부탁드려도 달려와 주신 신부님들이 참 고마웠다.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임을 체험하게 해 준 호스피스 봉사를 새롭게 떠올리며 부활이며 생명이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 이춘자 아녜스 수녀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