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떠나 강경으로
제주도는 김대건 신부 일행을 태운 라파엘호가 육지로 쉽게 빠져나가도록 두지 않았다. 제주도는 용암이 바다로 흘러들어 해안선을 이루었기에 창칼의 끝처럼 뾰쪽한 암초들이 온 섬을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해안선 앞바다를 ‘걸바당’이라고 한다. 아무리 작은 배라도 수심이 얕은 곳에 잘못 들어가면 암초에 부딪혀 부서지기 일쑤다. 다블뤼 신부는 “모든 섬 사이에 암초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가는 길에 있는 암초들을 모두 밀어내 주셨다. 한 번은 우리가 가는 길의 암초 중 하나가 바다 표면과 같은 높이로 있어서 우리가 방향을 크게 바꾸지 않는 한 다른 길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위의 편지 참조)고 설명했다.
조선 시대 제주 사람들은 육지로 나갈 때 주로 화북포(禾北浦)와 조천포(朝天浦)를 이용해 추자도나 소안도를 거쳐 전라도 영암 이진포(梨津浦), 해남 관두포(館頭浦), 충청도 강진 남당포(南塘浦)로 갔다. 제주도와 추자도 사이에는 대화탈도(大化奪島)와 소화탈도(小化奪島)가 자리하고 있다. 1702년 부임한 제주 목사 이경상의 「남환박물」에는 “이 두 섬 사이에는 해류가 교류해 파도가 세차게 일어나서 배들이 많이 표류하고 침몰하기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이 매우 고통받는다”고 적혀있다.
해류를 따라 표류해 제주도에 표착한 라파엘호는 육지로 가기 위해 맞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거슬러 항해해야 했다. “북동풍은 거의 멈추지 않았다. 완전히 역풍인데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는 본토를 따라 수없이 많은 섬 가운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했다. 맞바람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루에 4~8㎞는 앞으로 나아갔다. 어떤 때는 전혀 나가지 못하기도 했지만. 이런 식으로 보름이나 지나갔다.…우리의 형편없는 배로 더 올라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데에 낙심하고 이 항구에서 상륙하기로 했다.…우리는 상해에서 출발한 지 6주 만인 10월 12일 주일 저녁 8시에 배에서 내렸다.”
이처럼 다블뤼 신부는 1845년 10월 23일 충청도 공동 교우촌에서 동료 신부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주도를 떠난 지 보름이 지난 10월 12일 강경에 상륙했다고 밝힌다. 역산하면 9월 28일 제주도를 떠났음을 알 수 있다. 김대건 신부 일행은 제주도 서쪽 어느 곳에 표착한 후 그곳이 제주도임을 알고 그날 바로 육지를 향해 출발한 것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