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보다 엄마가 더 무서워!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서울에도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어요.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베드로 · 바오로 사도 축일은 거의 비가 내렸습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고요. 큰 성인 축일엔 항상 비가 내렸다고 하죠? 신자가 아닌 분도 농번기 가뭄 때는 성인의 축일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믿음도 그렇대요. 아이든 어른이든 믿음을 배우려면 경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경험이 사람을 신앙인으로 만들어준다고요. 저는 친가 외가가 5대째 내려오는 교우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항렬 친척 형제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사에 참례했는지 알아보려고 신부님 제의 색깔이 뭔지 어머니에게 추궁 당하기도 하고 애긍을 위해 끼니를 지을 때마다 한 줌의 쌀을 따로 덜어내는 할머니를 보고 자랐습니다. 사순절이면 매일 저녁 공소에 모여 성로 신공(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온 가족이 모여 조과, 만과, 묵주 신공을 바쳤습니다.
사촌들도 대부분 같은 경험을 해서 '하느님보다 엄마가 더 무섭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면서 컸죠. 이사 가도 항상 성당 근처로 갔다던 외사촌은 집이 성당에서 20분 이상 벗어나 봤으면 좋겠다는 말도 심심찮게 했습니다. 신앙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부모님 세대 덕분에 다들 엄한 신앙 교육을 받고 자랐죠.
신간 「안녕, 가톨릭!」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옛 생각이 났습니다. 교리를 따로 배운 기억보다 삶에서 터득한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 더 많았지요. 이 책은 가톨릭 신앙과 영성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저에게 새롭게 들어온 부분은 마지막 장인데요, 자비의 활동에는 일곱 가지 육체적 활동과 일곱 가지 정신적 활동이 있다는 부분입니다. 먼저 육체적 차원의 신비는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과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는 일,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는 일과 나그네를 따뜻이 맞아들이는 일, 병자를 방문하는 일과 감옥에 갇힌 이들을 돌보는 일. 그리고 죽은 이들을 위해 장례를 치르는 일입니다.
정신적 차원의 자비는 배움이 부족한 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방황하는 이들에게 조언하는 일,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일과 잘못한 이들을 바른길로 이끄는 일, 모욕하는 이들을 용서하는 일과 어렵고 힘든 일을 견뎌내는 일, 마지막으로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이런 자비의 삶이 마음을 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일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