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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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출판 공연전시

[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16) 목숨&제8처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참 빛 사랑 2018. 3. 25. 21:28


생의 종착지에 펼쳐진 이별 풍경


▲ 영화 ‘목숨’ 포스터




 2014년 개봉한 이창재 감독의 영화 ‘목숨’은 호스피스 병동 이야기다.

감독은 2008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영화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순례길에 필요하다고 생각해 챙긴 물건들이 길 위에서 그에게 고통을 주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준비한 짐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에서 진정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인생이라는 순례길의 종착지 호스피스 병동. 삶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 감독은 병동의 일상을 1년 동안 촬영한다. 사연은 다르지만, 모두가 자신 앞에 닥친 죽음을 맞이하러 왔다. 호스피스 병동에 머무는 시간은 평균 21일. 생에 대한 욕구와 희망마저도 죽음 앞에선 버려야만 한다. 하지만 살아 있기에는 모든 게 버겁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에 4명의 주요 인물은 1명 빼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 감독은 숨을 거두는 순간을 그대로 화면에 담아낸다. 깡마르고 까맣게 타버린 피부, 고통으로 멍든 눈빛은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와 닮았다.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돌보는 가족도 비친다. 세상에 남겨질 준비가 벅차 보였다.

영화는 무겁거나 침울하지 않다. 사제 성소에 회의를 느끼고 신학교 대신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신학생이 병원 복도에서 부르는 트로트 가요, 세상을 떠나는 마음가짐에 관해 이야기해주는 수녀님의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 그리고 남은 시간을 정확하게 알도록 인도하는 호스피스 센터장의 가르침. 하지만 매 순간 환우에게 주어진 선택의 무게는 에누리없이 절박했다.

췌장암을 앓던 전직 수학 선생님은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화면 속 묵주가 스쳐 지나갔다. 병실을 지켜온 그의 부인이 바쳤던 기도가 상상이 된다. 얼마 후, 그는 병동 사람들과 가족 사이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부인은 대신할 수 없었던 남편의 고통과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슬피 울었다.

▲ 제8처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문득 십자가의 길, 제8처 ‘예수님이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의 장면이 생각났다. 십자가의 길은 14세기에 예루살렘 순례자들의 묵상을 돕기 위해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마련한 기도다. 그 내용은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고 난 다음부터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과정이다. 18세기에는 복음과 전승에 기초하여 이를 14처로 나눴다.

제8처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본 예루살렘 여자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한다. 예수님은 돌아서서 그녀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루카 23,27-28) 하시며 여인들을 위로하신다. 만신창이가 된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인간성을 초월한 측은지심을 드러내신다.

호스피스 병동행이 결정된 순간부터 환우들의 십자가의 수난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질병을 이기지 못한 육체, 마음 안에서 정화되지 않은 미움,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가는 안타까움, 진통제로도 사라지지 않는 통증, 그리고 생에 대한 동물적인 본능. 이 모든 게 그들에게는 고난의 십자가였다. 영화는 우리에게 전해준다. 진실한 위로만이 마지막 순간에 어울리는 사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