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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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사람들

[서지환 평화칼럼] 성인을 찾습니다

참 빛 사랑 2026. 2. 14. 12:46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우리
‘적당히’ ‘최소한’의 신앙 넘어 예수님과 참된 우정 쌓아야
성덕으로 부르시는 하느님, 지금도 당신을 찾고 계신다



하느님께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계획의 일부다. 가톨릭 신자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국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산다. 하느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정말로 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원하셔서가 아니라 허락하셨기에 일어난다.

교회 역사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가장 어두웠던 순간들(위기와 박해, 전쟁과 이단)마다 하느님은 언제나 소수의 충실한 이들을 준비해두셨음을 알게 된다.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감당했던 사람들이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이름 없는 성인들이다.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그들의 충실함 덕분이며, 우리는 언젠가 하늘에서 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한국 역시 수많은 순교자의 피 위에 신앙이 뿌리내린 나라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서도 믿음을 증언한 이들, 그들 또한 대부분은 익명의 성인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신앙에 지친 가톨릭 신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그저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며 버텨가는 사람들, 신앙을 삶의 중심이 아니라 여러 영역 중 하나로만 여기는 이들이다. “연옥만 가도 성공한 거 아니야?” “주일 미사만 가면 됐지, 왜 그렇게 열심히 해?” 이런 말들을 우리는 낯설지 않게 듣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결코 ‘최소한’의 종교가 아니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규칙을 지키거나 외적인 실천을 수행해야 하는 곳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위대한 곳으로 부르셨다. 곧 성덕으로 부르셨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테살 4,3)라는 말씀처럼 말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성인이 되기를 바라신다. 우리를 당신과의 우정으로 당신 사랑에 온전히 잠겨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삶으로 초대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성화는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다. 매우 개인적인 부르심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그리고 나를 성인으로 부르신다. 성화를 이상화할 필요는 없다. 성인들은 모든 일이 술술 풀렸던 사람들이 아니다. 투쟁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났던 사람들이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인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성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첫 질문은 “무엇을 해야 하나?”가 아니라 “나는 정말로 성인이 되고 싶은가?”였다.

그러면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어떤 ‘성화의 레시피’나 빠른 방법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 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하느님에 대한 갈망, 그 목마름을 다시 깨우고 싶다. 자신이 성덕으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찾아간다. 그럼에도 몇 가지 중요한 핵심은 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이고 살아있는 관계다. 참된 우정, 곧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이 되시고, 진정한 친구가 되시는 것. 기쁨과 걱정, 모든 것을 그분께 이야기하고 맡기는 관계다. 성 호세마리아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분을 찾으려 하고, 발견하고, 알고, 사랑하는 단계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하느님의 친구들」 300쪽)

묵상 기도 안에서 자라는 이 우정으로부터 모든 것이 흘러나온다. 이웃 사랑, 십자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싶은 열망, 그리고 그분에게서 오는 기쁨과 평화가 바로 거기서 태어난다.

성인을 찾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성인을 찾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을 찾고 계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