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멜수도회 수사들이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시신이 보존된 은색 관을 열고 있다. 시신과 유물 연구는 교황청 승인 하에 이탈리아 연구팀이 진행한다. OSV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15-1582) 시신 일부와 관련 유물이 보존된 은색 관이 110년 만에 다시 열렸다. 데레사 성녀가 선종한 지 332년이 지난 1914년에 이어 두 번째 개봉이다.
은색 관은 성녀가 “저는 성교회의 딸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은 스페인 중서부의 작은 마을 알바 데 토르메스(Alba de Tormes) 수녀원 내 중앙 제대에 모셔져 있다.
관 재개봉은 지난 8월 28일 교황청 승인 하에 이탈리아 고고학자와 과학자들이 주도했다. 관을 다시 열어본 이유는 시신을 좀더 자세히 연구하기 위해서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훌륭한 보존 상태에 모두 놀라
이날 연구팀은 먼저 무덤의 대리석 석판을 제거하고 관을 들어 올렸다. 금세공사 2명이 무덤을 여는 작업을 도왔다. 이어 연구조사를 위해 따로 마련한 공간으로 관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수도자들은 사은 찬미가(Te Deum)를 부르며 이 과정을 지켜봤다.
관을 열기까지 무려 10개의 열쇠가 사용된 점도 흥미롭다. 10개 중 3개는 바깥문, 3개는 대리석 무덤을 여는 용도다. 나머지는 은으로 제작된 관을 여는 열쇠다.
아빌라교구는 “훌륭한 보존 상태에 모두 놀랐다”며 “연구팀은 페르디난트 6세 국왕 내외가 (18세기에) 기증한 무덤의 뛰어난 제작 솜씨에 찬사를 보냈다”고 밝혔다.
맨발의 가르멜수도회 마르코 키에사 신부가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이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1914년 처음 관 뚜껑을 열었을 때와 똑같은 상태이고, 첫 개봉 때와 마찬가지로 시신이 부패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키에사 신부는 “성녀의 발을 분석한 결과 걷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석회질 가시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데레사 성녀는 17개가 넘는 수도원을 설립하느라 스페인 곳곳을 여행했다. 부르고스에서 마지막 수녀원을 설립한 후 고향 아빌라로 가다 몸이 쇠약해져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알바 데 토르메스에서 눈을 감았다.
새로운 연구 결과 기대
키에사는 신부는 “성녀는 임종 몇 해 전부터 고통으로 인해 걷기조차 힘들었다”며 “그럼에도 성녀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연구를 통해 “데레사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과 유물 보존에 대한 권고 사항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성인 중 한 명이다.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교회박사 칭호를 받았다. 가르멜수도회 개혁가와 신비신학 영성가로서 큰 업적을 남겼다.
성녀 선종 소식이 알려지자 고향 아빌라와 선종지 알바 데 토르메스는 시신을 서로 모시겠다고 치열하게 경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아빌라로 빼돌려졌던 시신은 알바 공작이 교황청에 탄원해 알바 데 토르메스로 옮겨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시신 일부가 스페인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당시 유럽은 성유물 공경 열기가 뜨거웠다.
성녀가 십자가를 보듬어 안고 눈을 감은 방 옆에는 현재 작은 유물관이 꾸며져 있다. 유물관의 유리 벽 안에 성녀의 심장과 왼쪽 팔뼈가 모셔져 있다.
김원철 선임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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