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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전기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오현화 안젤라, 가톨릭기후행동 공동대표)

참 빛 사랑 2024. 6. 29. 14:42
 



5월 3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발표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은 향후 15년의 전력수급 기본방향을 2년마다 수립하는 중장기 계획이다.

제10차 전기본에서는 9차에서 수립했던 노후핵발전소 가동 중단과 재생에너지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뒤엎고, 핵발전을 중심으로 ‘합리적’으로 재생에너지 보급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번 11차 전기본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핵발전을 ‘무탄소 전원’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전 세계가 RE100(재생에너지 100%)을 외쳐도, 우리는 꿋꿋이 CF100(무탄소에너지 100%)을 외치고 있다.

정부가 기후 위기에 ‘합리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 핵발전을 확대하려는 이유는 에너지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 예측하기 때문이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 129GW의 전력수요가 발생할 것을 전제하고 재생에너지도 핵발전도 늘리는 계획을 밝혔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려 ‘제28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8)’에서 결정한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목표를 달성하고도 우리는 에너지가 더 필요하니 핵발전이 필수라는 것이다. 저출생 고령화로 인구가 줄고 있다고 하는데 에너지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AI·반도체 클러스터·데이터센터 등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산업구조 때문이다. 인구가 줄고 가정에서 아무리 전기를 아껴도 첨단 기술이 전기를 먹어치운다. 그렇다고 개인이 정부와 기업 탓만 하면 되는 건 아니다. AI·반도체·데이터 센터가 왜 필요한지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SNS를 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로 동영상을 보고, 생성형 AI를 이용할 때 내 휴대폰·컴퓨터만 전기를 쓰는 것이 아니다. 그 서비스를 위해 어디선가 기계와 냉각팬이 돌아가고, 엄청난 전기가 필요하다.

전기는 사용자가 자가발전하지 않는 이상, 어딘가 있는 발전소에서 생산되어 송전선을 타고 수요처로 온다. 늘어나는 전기수요를 감당하려면 핵발전소뿐 아니라 송전선 확충을 위해 어딘가에 거대 송전탑이 또 세워져야 한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것을 알게 해준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을 기억하는가. 지난 6월 11일은 밀양 행정 대집행 10주기였다. 청도와 밀양의 거대한 철탑은 핵발전소에서 대도시로 전기를 수송하기 위한 시설이다. 그곳에 여전히 저항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공동체를 파괴하고 천막을 뜯고 설치된, 누군가의 ‘희생’이 바탕이 된 첨단 사회가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미래인가.

기술의 편리 앞에서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잊게 된다. 휴대폰으로 결제해서 상품을 문앞 배송으로 받으며 그 물건의 생산·운송 과정이 소거되는 것처럼. 개인이 악하거나 무심해서가 아니라 오늘의 이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증가하는 전력 수요의 잠정적인 원인이 되어버린다.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기에 첨단·스마트·효율·합리 등의 껍질을 쓰고 폭주하는 이 사회 안에서 우리는 더욱더 고민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석기 시대로 돌아가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속도를 줄여서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바라보며 긍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받아들이는 것과 더불어 지나친 과대망상으로 잃어버린 가치와 중요한 목표들을 되찾아야 합니다.”(「찬미받으소서」 114항)



오현화(안젤라) 가톨릭기후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