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험과 만남의 중요성
1932년생이니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분단, 6·25전쟁, 민주화운동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었다. “소년 시절이지만 중학교 때까지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해방 이후에는 과격하지는 않지만 저항정신을 갖고 살아왔어요. 내 생각에 우리 세대가 원했던 건 ‘민족’과 ‘민주주의’였거든.”
그 격동의 세월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또 한편으로 그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단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영화와 연극을 배웠다. 당시 미래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정책상 입대하지 않고 계속 대학에 다닐 기회, 해외 유학의 길이 열렸던 것이다. “나는 부족한 사람인데 시운(時運)이 좋았다고 할까. 혜택을 많이 받았죠. 전쟁 시기에는 문학 동인들이 시를 썼는데, 그러면서 불란서 영화에 끌려서 프랑스 유학을 갔어요. 며칠 전 우리 박물관 고전영화상영회에서 마르셀 카르네의 ‘인생유전(Les enfants du paradis)’을 봤는데, 50년대에 빠졌던 영화야. 시적 리얼리즘이 뛰어난 작품이거든. 그렇게 영화 공부하러 간 프랑스에서 연극을 알게 됐지. 그래서 사람이 누군가를, 무언가를 만난다는 게 중요해요.”
귀국 후 굵직한 직함만 살펴봐도 극단 자유 예술감독에 중앙대 연극영화과 교수 및 예술대학원 원장,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한국영화학회 회장, 국제극예술협회 세계본부 회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등 웬만해서는 하나도 하기 힘든 일을 모두 섭렵했으니, 지난날에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집사람도 나더러 그런 말을 하는데, 그래도 후회되는 게 많아요.(웃음) 물론 하고 싶은 일을 다양하게 열심히 했다는 건 잘한 것 같아. 연극, 영화, 시가 모두 어우러지는 일들이었고. 지금까지 연출한 100여 편의 작품도 시적인 부분과 연결되어 있거든.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점에서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인데, 아쉬운 건 어디를 가나 연극만 열심히 하고 돌아왔다는 거. 좀 더 깊게 들여다보고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났어야 했는데, 세상 많은 곳을 다녔지만 제대로 보지는 못한 것 같아요. 특히 젊었을 때는 많이 돌아다녔지만 언제나 너무 가난했거든. 이제 돈 좀 쓰면서 여기저기 다니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듣네.(웃음)”
끝나지 않은 자유와 저항정신
누구보다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았기에 몸에 깃든 90년의 세월이 더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거동이 불편하고, 잘 들리지 않고, 경험하고 사고하는 것에 비해 표현력이 저하된 지금의 모습이 마주 앉은 기자의 마음까지 안타깝게 한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인터뷰 내내 놀랍도록 해맑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욕심나는 얼굴이다. “그래요(웃음)? 난 얼굴에 비해 귀가 큰 편인데. 결국, 사람들의 95%는 자기도 모르게 틀에 박히기 쉬워요. 그렇게 틀에 박힌 인생으로 마감하는 경우가 많지. 그래서 자유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틀에서 벗어나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유와 저항정신이 있어야 해. 우리 인생에도.”
지금껏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운 광대로, 해맑은 표정을 간직할 수 있었던 그에게는 아직도 꿈이 있다. “얼굴박물관 같은 곳이 다른 나라에는 없어요. 그 의미를 잘 이어가고 싶고, 나는 계속 연극을 했으니까 극예술문학관도 하나 만들고 싶어요.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상당수가 극작가인데, 우리나라는 희곡 분야, 극예술이 약하거든. 오태석 등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과 희곡 분야를 좀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이렇게 그에게는 또 하나의 직함이 더해지지 않을까. 김정옥 연출은 우리나라 예술계에 살아 있는 기록, 매일 소장품이 더해지는 움직이는 박물관인 셈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