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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순의 교회, 세상의 혼처럼] 대화, 세상의 혼이기 위한 매트릭스

참 빛 사랑 2022. 7. 23. 10:15

최현순 데레사(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

 
 

대화, 이것은 아마도 최근 한국 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 지역 교회의 삶과 활동을 표현하는 핵심적 단어일 것이다. 그리고 내년 세계주교시노드를 향한 각 지역 교회의 시노드가 마무리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잔치가 끝난 후의 정적’ 같은 것을 느끼면서 이렇게 묻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화는 이것으로 끝난 것일까?” “이제 그 결과가 위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

과연 그럴까? 이번에 체험한 대화는 사실 단순히 의견을 모으기 위한 과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노달리타스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를 지금 여기에서 실행하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대화는 3000년기, 우리가 속한 각 지역 교회 및 교회 공동체에서 지속해야 할 삶의 방식이 아닐까?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2회기 개막 연설에서 공의회의 목표를 “교회의 자기 인식, 교회의 개혁,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 그리고 교회와 현대 세계와 대화”라고 규정했다. 대화는 공의회에서 다룬 주제들의 근간 및 공의회의 활동방식이었다. 교회 구성원들의 관계, 비가톨릭 그리스도인들과 관계, 그리고 교회와 세상과 관계를 다루면서 공의회의 가르침은 일방적이 아닌 양방적 전망 안에서 수립됐다.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 각각의 고유한 역할을 선언하면서도 그것은 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됐고, 세상은 사목의 ‘대상’으로만이 아니라 교회가 그 안에서 함께 가고 있는 존재로 이해됐다. 공의회 문헌에서 일방적으로 받기만, 즉 그저 ‘대상’으로만 머무는 존재는 없다. 또한 공의회 문헌은 자유롭고 치열한, 동시에 질서있는 대화의 과정 속에 형성됐다. 대화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강력하게 열어놓은 교회의 삶과 활동의 방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공의회 이후의 시대, 그리고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잘’ 대화할 것인가이다. 사실, 전통적인 한국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잘’ 대화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이것은 대화의 ‘기술’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물론 기술도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참된’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전망의 변화가 필요하다. 아마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랑의 기쁨」에서 제안한 내용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이것은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며, 그가 살아가고 스스로 생각하며 행복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자기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어도 상대방의 말이나 생각을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저마다 서로 다른 경험을 하고, 모든 것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며, 자신들만의 관심사와 능력과 직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138항)

“자신의 좁은 생각과 견해에 집착하지 말고 생각과 견해를 바꾸고 넓힐 준비를 하십시오. 나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을 결합시키면 이를 풍요롭게 해주는 새로운 종합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139항)

누구도 세상의 일을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하며, 누구도 ‘완벽한’ 해결책을 갖지 못한다. ‘절대적’이라는 말은 오직 하느님께 유보해야 할 단어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장점과 부족함을 지닌 채, 대화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고 이렇게 할 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함께여서 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도 희랍어 ‘함께- 일함’에서 유래한 ‘시너지’ 효과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시너지는 그보다 더 크고 더 고귀하지 않겠는가? 성령께서 함께하는, 그리고 영원을 향해 가는 길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