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답에서 시작하는 주체적인 신앙
김 신부는 본당이나 교구 특강 등에 초대돼 자기소개를 할 때면 몇 가지 키워드로 자신을 설명하곤 한다. 그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물음표’다. 그가 팬데믹 이후의 신앙을 말할 때 질문을 강조했던 건, 그 역시도 질문하는 신앙인으로, 사제로, 학자로 살아오기도 해서다. 김 신부는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못 넘어간다”고 했다.
“교회에서 믿으라는 대로 믿는 게 저는 잘 안 됐어요. A=B라고 하면 왜 B인거지? C는 안되나? D면 어떨까? 라고 생각해 보는 거죠. 신학자가 아니어도 내가 믿는 신앙에 물음을 던지고 질문에 스스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 나는 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지와 같은 물음처럼요.”
질문을 하다 보면 교회에 실망할 때가 많아진다. 특히 질문이 나를 향하지 않고 타인을 향할 때 더 그렇다. 김 신부는 “왜 이런 걸까, 왜 저렇게밖에 못 할까라고 실망하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나는 어떤 응답을 할 수 있는지를 되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럴 때 비로소 신앙은 주체성을 띄게 된다.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갈 때 주체적인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도 답도 모두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있는 건 아닌지요. 질문하다 보면 혼자서 답을 찾는 건 힘이 듭니다. 그래서 교회가 함께하는 겁니다. 함께 응답하면서 길을 찾다 보면 신이 나거든요.” 주체성은 기쁨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가 된다.
교회 틀 안에만 갇혀 있어선 안 돼
신앙에 관해 질문하고 응답하며 주체적인 신앙생활에 신이 났다면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사는, 세상에 사는 신앙인이다. 김 신부는 “교회 구성원이 된다고 하는 것은 교회 틀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며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을 기꺼이 환대하고 존중하며 세상 사람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도 늘 강조하시지요.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요. 「복음의 기쁨」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습니다. 교회 틀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열려 있어야 우리 신앙은 완성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변화뿐만 아니라 세상 안에서의 변화도 이뤄내야 합니다.”
변화를 위해선 민감해야 한다. 무감각은 원래 이렇게 해온 것이라며 일어서려 했던 이들을 눌러 앉힌다. 우리끼리만 잘하면 되지 굳이 세상 사람들과도 나눠야 하느냐며 현실에 안주하게 한다. 그런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알아채는 데 둔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민감하지 못해서 놓쳐버리는 것이 많습니다. 코로나19도 하나의 시대 징표겠지요. 사회가 보내는 신호들, 징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떤 목소리를 외면한다거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보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 시야가 굉장히 좁아지고 교회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될 것입니다.”
신비와 은총, 진리가 사라져 가고 있어
우리 교회가 지금 읽어야 할 시대 징표는 무엇일까. 김 신부는 신비와 은총, 진리가 약화되는 현실을 거론했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 관심, 신적인 것에 대한 믿음, 은총과 같은 가치를 세상이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이 잊어버린 가치를 발견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종교의 역할이기도 하지요.”
김 신부는 신비의 약화로 인간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갑질 문화, 노동 착취 등을 예로 들었다. “인간이 신비로운 존재임을 인정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은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면서,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을 우대한다. 그런 세상에서 교회만은 그렇지 않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종교가 부를 추구하고 권력을 좇고 정치와 야합하면 하느님 구원과 해방의 신비를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김 신부는 또 “모든 것을 오로지 자기 재능과 노력만으로 성취했다고 생각하는 사회엔 은총이 없다”고 말을 이어갔다.
“내 성공이 누군가의 헌신과 도움, 배려로 이뤄졌다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엔 잘난 사람만 있지 않죠. 부족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노력하지 않았고,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잘못된 겁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주장만을 일삼고 자기 생각만을 옳다고 여기는 세태에서 그는 진리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본다. “저마다 자기 취향대로 자기 이데올로기로 만든 상품을 진리처럼 선전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면서 “사기꾼들의 논리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교회는 세상 한가운데에 있어야
신비와 은총, 진리는 교회의 언어이기도 하다. 교회가 지닌 가치를 세상의 언어로 풀어내 전하는 것 또한 교회의 몫이다. 그러려면 삶의 터전에서 교회는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
김 신부가 1990년대 독일에서 공부했던 요한 밥티스트 메츠(1928~2019)의 정치신학도 구체적인 역사의 현장에서 출발했다. 메츠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열여섯의 나이로 소년병으로 징집됐다.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견뎌냈던 메츠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우슈비츠의 이후의 신학’을 전개했다. 김 신부는 1980년대 광주 5ㆍ18 민중항쟁을 겪었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치적 사회적 차원을 강조하고,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 고통의 기억과 실천에 대한 문제를 새로운 성찰로 이끈 메츠의 신학에 깊이 빠져들었다.
“교회는 세상 한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자기 자신에게서 나와 거리의 진흙탕에 더럽혀지더라도 변두리, 변방으로 떠나야 하고 야전병원이어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초대에 더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그는 “교회가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고 정치 문제를 논하는 것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또 “인간의 존엄을 외치면서 존엄을 해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 정치적인 문제를 빼고 말하는 건 허구”라고 했다.
“어떻게 말하는지 방법적인 면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겠지요. 정치는 삶과 생활, 행복, 가치와 직결돼 있습니다. 정치 얘기를 한다는 건 그런 부분을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5ㆍ18에 관심을 갖는 건 제가 광주의 신부라서가 아닙니다. 제주 4ㆍ3, 세월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관심사이기 때문이지 어떤 지역적 특색이나 정치적 논리에 따라선 안 되는 것이지요.”
신자들은 선물처럼 선사 받은 존재
김 신부는 6년간의 교구 사목국장 소임을 마치고 올해 다시 교수 신부로 강단에 서게 됐다. 김 신부는 “지난 6년간 학교 일을 다 잊어버려서 완전히 새롭게 사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목국장으로 신자들과 만나고 교구 일을 하면서 “신자들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좀더 일찍 느꼈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이라도 알게 돼 다행입니다. 광주대교구가 ‘3개년 특별 전교의 해’를 지내면서 교구 사제, 수도자, 신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하느님 백성의 대화’를 마련했었거든요. 시노드였죠. 그때 하느님 백성 모두가 서로에게 선물로 존재한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특히 신자들에게서 많이 배웠고요. 신자들은 당연히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선물처럼 선사 받은 존재라는 걸 크게 느꼈죠.”
그는 “사목국 일이나 학교 일이나 근본적으론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며 “결국은 이 시대 안에서 어떻게 복음을 선포할 것인지를 묻고 학교 안에서는 다양한 수업으로, 교구에서는 여러 행사와 사목으로 그 물음에 응답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다시 질문과 응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