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굣길 아이들에게 빵 나눠주는남해 행복 베이커리 김쌍식 대표



▲ 김쌍식 대표가 아이들에게 빵과 요구르트를 나눠주고 있다. 빵을 받아든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나눔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 될 일이다. 어떠한 것이라도 좋다. 비록 그것이 말 한마디 일지라도.
대림 제4주일을 맞아 등굣길 아이들에게 빵을 나누는 빵식이 아재, 남해 행복 베이커리 김쌍식 대표를 만났다.
행복 베이커리로 가는 길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준다고? 그것도 빚까지 내서?’ 김쌍식(49) 대표를 처음 본 건 한 방송프로그램에서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도대체 왜?’, ‘굳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김 대표에게 전화했다. “전화로 하지, 먼데 뭐할라꼬 올라 캅니까.” 수화기 넘어 그의 목소리에서 배려심이 느껴졌다. 그래도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하자 김 대표가 말했다. “그라믄 오이소.” 그렇게 남해행 버스에 올랐다.
서울에서 남해까지는 4시간 30분. 슬슬 허리와 엉덩이가 아파져 올 때쯤 남해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10여 분 걸었을까. 작은 골목에 위치한 ‘행복 베이커리’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주방에 있던 김 대표가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김 대표에게 ‘아이들 줄 빵은 언제 만드시느냐’고 했더니 매일 새벽 5시에 만든단다. 남해 도착이 오후였던 터라 다음 날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빵이 나오는 시간
전날 장시간 버스를 타서인지 몸을 일으키기가 힘겨웠다. 숙소에서 짐을 챙겨 빵집으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새벽 5시. 아직 청소차도 다니지 않는 새벽, 가로등 불빛만이 거리에 빛났다.
행복 베이커리 앞에 도착했는데 가게 안이 환하다. 음악 소리와 빵 냄새가 가게 밖으로 흘러나온다. 가게로 들어서니 김 대표가 인사를 건넨다. “잘 주무셨습니까? 피곤하지예.”
김 대표는 새벽 5시부터 아이들에게 줄 빵을 만든다. “오븐에 불을 올리고 애들 줄 빵부터 발효를 시킵니다. 항상 애들 줄 빵이 먼저죠.” 빵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시간. 7시에 빵을 내야 식히고 포장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7시 30분부터 빵을 내놓거든요. 7시 35분 정도 되면 첫 번째로 중학생 자매가 옵니다.” 이날도 7시 35분쯤 중학생 자매가 왔다.
“아들~딸~어서 와~”, “안 춥나?” “아무 이상 없으니까 좋다. 마스크 절대 벗지 말고~”, “시험 잘 보고. 끝나면 맛있는 거 많이 줄게.” 김 대표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서슴없이 다가간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그의 따뜻한 마음이다.
빵식이 아재를 살게 하는 힘
슈크림 빵, 딸기 롤 케이크, 소보로 빵 등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빵은 매일 다르다. 아이들이 지겹지 않도록 매일 빵을 바꾸는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절대 같은 빵 아입니다. 처음에는 같은 빵을 했는데 이상한 소문을 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인근에 소문이 났다. 김 대표가 아이들에게 며칠 지난 빵을 준다고. “내가 참 그때 마음의 상처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애들이 먹어보고 애들한테 물어보면 대번에 알 건데….” 지금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그보다 김 대표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남들이 인정을 해주니까 내가 옳았구나 생각하죠. 진짜 제 걱정해주고 좋은 이야기해 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김 대표의 가장 큰 보람이다. 김 대표가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만큼 아이들이 그를 생각하는 마음도 크다. 아이들은 빵을 가져가면서 꼭 가게 안으로 고개를 내밀어 감사 인사를 한다. “애들이 인사를 얼마나 잘하는지 압니까? 아마 남해군에서 제가 애들한테 인사를 최고 많이 받을걸요. 그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김 대표는 아이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
행복을 굽다
김 대표는 18살 때부터 빵을 만들었다. 외삼촌이 빵집을 했는데, 일손을 도왔던 것이 계기가 됐다. “빵 나오는 게 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흥미를 느끼다 보니까 적성에 너무 맞는 기라. 빵도 실컷 먹을 수 있고.” 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32년째 빵을 만들고 있다.
“좀 바보 같죠?” ‘다른 일은 해본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게 천직 같아서 다른 걸 해볼 생각을 안 했어요. 적성에 맞고, 빵은 정말 종류도 많고 다양하게 만들 수 있거든요. 가장 큰 매력인 거 같아요.”
김 대표가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기 시작한 것은 2020년 4월부터다. 그전에는 마트 안에서 빵집을 운영했던 터라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늘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남들한테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김 대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옷 한 벌 못 살 정도였다. 그의 사정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은 항상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받은 만큼 돌려주자.’ 김 대표는 빵을 만들고 나서 사람들과 나눠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제가 돈이 많아서 뭘 사주진 못 하니까, 기술이 있는데 제가 부지런하면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시간도 있고. 더 늦기 전에 하자. 그렇게 해서 시작한 거라요.” 김 대표는 오늘도 행복을 굽기 위해 오븐에 불을 켠다.
의인이 된 빵쟁이
“7월에 LG에서 의인으로 선정됐다고 전화가 왔는데 제가 이런 사기꾼이 있나 캤어요. 누가 봐도 사기 아닙니까? 제가 무슨 의인이라고.”
김 대표는 LG의인상을 두 번이나 거절했다. 받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지인들이 계속해서 상을 받으라고 했다. “‘사장님 힘들지 않습니까. 받으십시오. 이거는 하느님이 주는 기회입니다. 복을 내리는 겁니다. 상금 받아서 또 그거 갖고 하면 안 됩니까?’ 카더라고. 그래서 받았어. 사실 돈 때문에 받은 거야.” 코로나19로 김 대표는 4월과 5월 힘든 시간을 보냈다. 6월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려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아이들에게 빵은 줘야겠고 돈은 없고. 그는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빵을 만들어 아이들과 나눴다.
그뿐만 아니다. 사랑의 집, 장애인복지센터, 남해초등학교, 남해군 소년소녀가장·조손가정 등 김 대표가 손을 내미는 곳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1년에 금액으로만 2000만 원에 달한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들과 나눴다.
방송에 나가고, 의인상을 받으면서 김 대표를 알아본 사람들의 후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후원자들이 보장하는 그는 의인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주변에서 이제 그만하라고 하죠. 저희 어머니도 누나도 이제 어지간히 하라고 합니다. 근데 듣는 둥 마는 둥 합니다. 마음이 그리 안 되는데 우짭니까.”
김 대표의 빵 나눔은 계속된다. 그가 나이 70이 될 때까지. 이후에는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해 빵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고 그들의 자립을 도울 계획을 세웠다.
“나눔이라 카는 게 금전적으로 따지고 이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봉사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거든요. 누가 기부를 크게 얼마 한다고 해서 대단하다 이런 게 아닌 것 같아요. 하는 마음 자체가 중요한 거지요.”
김 대표는 오늘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루를 살았다. 사람들 눈에는 그 모습이 어쩌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음이 그렇게 안 되는 것을.
김 대표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그가 살아가는 삶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었다. 대림 제4주일, 김 대표에게서 참 신앙인의 모습을 봤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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