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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노숙인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명동의 착한 사마리아인들

참 빛 사랑 2021. 12. 14. 20:23

[자선 주일 현장체험] 명동밥집 라파엘나눔 홈리스 클리닉

▲ 무료 진료소 ‘라파엘나눔 홈리스 클리닉’은 매주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서울 명동밥집 옆에서 문을 연다. 간이 진료소 앞에서 환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주일이면 서울 명동에는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모인다. 무료 진료소 ‘라파엘나눔 홈리스 클리닉’ 자원봉사자들이다. 홈리스 클리닉은 서울대교구 무료급식소 ‘명동밥집’ 옆에 자리한 간이 진료소이다. 재단법인 라파엘나눔이 운영하는 이곳은 노숙인 진료를 맡은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면서 발생한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문 열었다. 중병이나 암이 의심되는 노숙인은 국립중앙의료원이나 서울적십자병원처럼 더 큰 의료기관에서 무료로 치료받도록 주선한다. 대림 제3주일이자 자선 주일을 맞아 홈리스 클리닉 자원 봉사자로 참여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명동의 착한 사마리아인들

홈리스 클리닉 운영시간은 주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다. 봉사자들은 12시 30분에 미리 모여 코로나19 방역복 착용 교육을 받았다. 1시부턴 사전 교육 시간이다. 이날 봉사자는 모두 49명. 의사와 간호사ㆍ의대생 등 의료인은 물론 일반인도 있었다. 청년이 가장 많았다. 봉사자들은 진료ㆍ접수ㆍ검사 등 각자 능력에 맞는 업무를 맡았다. 기자가 맡은 업무는 ‘진행’이다. 접수한 환자를 알맞은 진료과로 안내하는 역할이다. 진료소 앞에 마련된 간이의자에 앉히고, 이들의 진료표를 의료진에게 전달하면 된다. 1시 40분이 되자 환자들에게 진료 대기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1920년대 생부터 나이순으로 돌아갔다. 모든 환자는 마스크ㆍ손소독제와 함께 일회용 방석도 받았다. 따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차가운 운동장 돌계단에 앉아 자기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 봉사자가 환자의 혈당을 재고 있다.




홈리스 클리닉 환자들의 얼굴들

올해 99세인 최고령 환자 김종원 할아버지는 “여기 오면 밥도 공짜로 먹고 치료도 받으니 좋다”며 수줍게 웃었다. 면도칼로 티눈을 없애다 파상풍에 걸린 할아버지는 본인을 베트남 참전 용사라고 소개하며 “서울 현충원에 묻힌 동료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혜택도 못 보고 떠나서란다. 라파엘 클리닉을 다니면서 감동 받아 예비 신자가 된 환자도 있었다. 85세 할머니는 대뜸 명문대를 졸업한 자녀와 손주 자랑에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 “애들에게 해가 될까 봐 아프단 말도 못 한다”고 손을 저었다. 정작 할머니는 “어디가 아프시냐”는 의사의 질문엔 우물쭈물 대답을 제대로 못 했다. 그저 “그냥 온몸이 다 아파요. 아무 약이나 선생님이 알아서 주세요”라는 말만 거듭할 뿐이었다.

많은 환자가 고령과 장애 때문에 증상을 정확히 묘사하기 어려워했다. 환자 몇몇은 하굣길 학생들처럼 무리를 지어 떠났다. 서울 둔촌동에 산다는 할머니는 성남 ‘안나의 집’에서 만난 형님을 배웅하러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그는 “형님이 멀리 퇴계원에서 여기까지 오는 게 참 딱하다”고 혀를 찼다. 한 중년 환자는 약 봉투를 넣을 주머니가 없어 곤란해 하는 노인에게 약을 건네받아 자기 가방에 담았다. 그리고 노인의 손을 잡고 부축하며 함께 걸었다. 그렇게 덜 어려운 이는 더 어려운 이를 도우며 살아내고 있었다.
 
▲ 날씨가 추운 가운데 라파엘나눔 홈리스 클리닉 환자들이 번호표를 받은 채 방석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봉사가 주는 크나큰 기쁨

홈리스 클리닉은 환자뿐 아니라 봉사자들에게도 나눔과 자선의 기쁨을 준다. 국립중앙의료원 소화기내과 의사이자 봉사 동아리 ‘더 네이버스’ 회장인 권혁춘(체칠리아, 서울대교구 방배4동본당)씨는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에게 이처럼 문턱이 낮고 친절한 의료공간이 있어 정말 좋다”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함께 참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수료증을 받아 정식 봉사자가 된 박선주(에스테르, 서울 쑥고개본당)씨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참여할 수 있어 신앙인으로서 가슴이 벅차다”며 “한 달에 두 번씩은 꾸준히 나올 것”이라고 다짐했다.

보람찬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기껏 진료 예약까지 다 해놓고 말없이 안 오는 ‘노쇼’는 양반이다. 고맙다는 말은커녕 말없이 차가운 태도로 약만 휙 채가거나 짜증과 투정을 부리는 환자도 있다. 난데없이 “자기 순서가 왜 이렇게 늦느냐”며 봉사자에게 화를 내는 일도 다반사다. 대부분 낮은 자존감과 피해의식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봉사자가 허탈해 했고, 속상함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35주째 봉사하다 업무차 1년간 코트디부아르로 떠나게 된 변규원(23)씨는 “환자들에게 거친 말을 들을 때마다 되게 지쳤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봉사자들이 노련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며 “이제는 얼굴도 익히고, 친하게 지내는 환자들이 많아 떠나기 참 섭섭하다”고 말했다. 그런 그를 본 라파엘나눔 상임이사 안규리(아기 예수의 데레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가 그동안 수고했다며 꼭 껴안아줬다.



도움이 필요한 홈리스 클리닉

이웃사랑을 나눌 ‘착한 사마리아인’을 구하는 일은 물론 쉽지만은 않다. 라파엘나눔 임만택(제노) 후원회장은 “봉사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면서도 “아무래도 주일에 봉사하다 보니 연휴가 끼거나 시험기간인 경우는 봉사자를 모집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당장 주님 성탄 대축일 다음날인 26일이 주일인데, 아무래도 봉사자가 적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금전적인 문제도 크다. 임 회장은 “초창기보다 환자가 크게 늘어 약품값 등이 더 많이 든다”며 “후원금이 더 많이 들어와 안정적으로 노숙인에게 진료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어 “날이 추워지고 있는데, 지금 형편상 방한 대책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밖에서 오래 대기하는 환자와 봉사자가 걱정”이라고 밝혔다. 추운 날씨엔 혈관이 수축해 혈압이 높아지기 쉽다. 작은 혈압약 하나가 노숙인 목숨을 좌우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의술과 약을 제공하는 홈리스 클리닉은 작지만 큰 진료소다. 임 회장은 “소외된 이웃과 함께 사는 삶을 위해 클리닉은 앞으로도 힘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 라파엘나눔 홈리스 클리닉 봉사자로 참여한 이학주 기자.




취재후기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노숙인은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다른 차원을 사는 듯이 느껴지는 낯선 존재였다. 그들과 말이나 시선을 주고받기는커녕 그저 앞만 보며 지나쳤기 때문이다. 이번 봉사를 통해 마침내 노숙인과 살을 맞대며 가깝게 만날 수 있었다. 진료소로 함께 가는 동안 거동이 어려운 그들은 떨리는 손으로 내 팔을 꼭 붙들고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디뎠다. 그리고 나지막이 ‘고맙다’고 말했다. 누군가 이렇게 내게 의지한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곧 생명의 길로 이끄는 ‘길잡이’였다. 그 덕에 잊고 있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노숙인도 나처럼 울고 웃기도, 아프기도 하는 36.5도 체온을 가진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발맞춰 걷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 ‘형제’라는 것을 말이다.



‘라파엘나눔 홈리스 클리닉’ 봉사 및 후원 문의

입금계좌 : 신한은행 100-031-125200(재단법인 라파엘나눔)

연락처 : 02-744-7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