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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하느님과 어떤 약속을 하셨나요

참 빛 사랑 2021. 6. 29. 20:47

[미카엘의 순례일기] (25)약속을 봉헌합니다

▲ 할머니와 함께 순례를 온 아이가 봉헌 바구니를 들고 신자들의 정성을 모으고 있다.

 


언젠가 60대 중반의 자매님께서 순례가 시작되고 3일 정도 후에 저를 조용히 부르신 적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은 지 3개월이 되셨는데, 제가 순례단과 나누는 이야기가 때로는 알아듣기 버겁다는 말씀이셨습니다. 6개월간 교리를 열심히 받았지만 아직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도 하셨습니다. 저는 내일부터 조금 더 쉽고 자세하게 설명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그리고 자매님께서 성당에 도착하면 누구보다 먼저 제대 앞 십자가로 다가가 성호를 긋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그래서 모태 신앙이거나 오래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라고 짐작했었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남편이 모태신앙이에요. 제가 십자가 앞에서 성호를 긋는 것은 남편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운 것이고요. 그이는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는데도 성당에 같이 다니자는 말 한 번 없었어요. 그동안 성당 활동도 하지 않았는데, 아마 저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남편은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항상 거실 벽에 걸린 작은 십자가상부터 찾아요. 항상 명랑하고 우스갯소리도 잘하는 사람인데, 그 시간만큼은 얼마나 경건한지 몰라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십자성호를 조심해서 긋고는 앉아서 기도를 해요.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와도 빼먹은 적이 없어요. 그래 봐야 1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저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남편의 변치 않는 그 모습을 30년 동안 지켜보면서 어느샌가 하느님을 믿게 되더라고요.”

남편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보신 적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형제님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1분은 하느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어린 시절에 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는 것, 그리고 하루에 1분은 하느님께 드리는 것을 그분과 약속했거든.”

다음 날 저는 순례 중에 성경과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구약, 신약으로 나누어진 성경은 하느님과의 계약에 관한 것임을 말씀드리고, 자매님의 허락을 구한 후 형제님의 작은 기도와 성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순례가 끝나갈 무렵, 지도 신부님께서 강론을 시작하시면서 성호를 크고 천천히 그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언제든 성호를 그을 때는 지금처럼 손동작을 크고 천천히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우리 순례단 각자도 순례 후에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약속 하나씩을 정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순례 마지막 날 미사 때에 그 내용을 한 분씩 발표하고, 봉헌금을 대신해서 그 약속이 담긴 메모지를 봉헌하자고 덧붙였습니다.

순례의 마지막 날 미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두 메모지를 한 손에 든 채 조금은 들뜬 마음이었습니다. 강론 시간이 되어 한 분씩 자신이 실천하기로 한 내용을 발표하였습니다. 한 형제님께서는 매일 복음을 읽겠다고 하려 했지만 지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매일 사무실 책상 위에 그 날의 복음 부분이 보이도록 성경을 펼쳐 놓기로 했다고 말씀하셔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셨습니다. 자매님 한 분은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동료들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속으로만 식사 기도를 하셨지만, 앞으로는 작게라도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한 분의 자매님께서는 미사 때 봉헌하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고백하시고는, 커피를 사 마시게 될 때마다 한 잔의 커피값을 꼭 따로 챙겨서 그 돈을 봉헌금에 보태겠다고도 하셨습니다.

순례를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신부님께서는 캐리어에서 작은 보따리 하나를 꺼내서 저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약속이 담긴 메모지가 가득한 보따리였습니다.

“전 약속을 하나 더 하겠습니다. 저는 특수 사목을 담당하고 있어서, 혼자 미사를 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방에 마련된 작은 제대 위에 이 보따리를 두겠습니다. 그리고 혼자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여러분의 약속이 꼭 지켜지기를 지향하겠습니다. 언젠가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때, 우리가 그 약속을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을 믿습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하느님과 수많은 약속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질 때만 그 의미가 있습니다. 하느님과 나와 한 약속은 때로 보이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곤란하고 귀찮아질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이에서 했던 그 어떤 약속보다도 중요한 것이 하느님과의 약속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요. 예수 성심 성월의 마지막 주간입니다. 단 한 번도 우리와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신 그분께, 우리가 했던 약속들을 되살려보고 다시 한 번 결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