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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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합창단 성가 소리에 감동의 눈물 흘린 노(老) 수사

참 빛 사랑 2021. 1. 28. 20:19

[미카엘의 순례 일기] (4)인스브루크에서의 작은 공연

▲ 가톨릭평화방송 소년소녀합창단이 부르는 성가가 조용한 수도원 성당에 흐르자 수도자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며칠째 새하얀 눈송이가 하늘에서 펑펑 내려옵니다.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갓 쌓인 눈을 밟는 발걸음 소리가 마치 노랫소리처럼 귓가에 내립니다. 차가운 공기와 따뜻해지는 가슴, 이런 날이 참 좋습니다.

마치 요즈음의 풍경처럼 사시사철 하얗게 눈 덮인 알프스 산맥은, 동쪽의 슬로베니아에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리히텐슈타인,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까지 유럽 중부를 길게 가르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몽블랑을 비롯해 만년설로 뒤덮인 봉우리들과 수많은 푸른 호수들도 손꼽히는 절경입니다. 그중에서도 티롤 지방의 아름다움은 특히 유명합니다.

이곳은 예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했다가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가 서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오스트리아 쪽에 위치한 인스브루크는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신학자들의 산실로도 잘 알려진 도시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자문위원이자 20세기 가장 뛰어난 신학자 중 하나였던 칼 라너 신부님께서도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가르치셨으며, 서울대교구 총대리이신 손희송 주교님을 비롯해 한국의 많은 신학자 역시 이곳에서 신학을 공부하셨습니다. 인스브루크 유학 중 불의의 사고로 선종하신 김정훈 베드로 부제님의 유고작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라는 책은 신앙인으로서 일독을 권합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가톨릭평화방송 소년소녀합창단이, 유럽순회 공연 중 인스브루크를 방문했습니다. 뿌에리칸토레스(puericantores, ‘노래하는 어린이’라는 뜻으로 전 세계적인 어린이 합창단 모임)의 일원으로서 로마에서 열린 축제에 참가하기 위한 순례 여정이었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성 바오로 대성전을 비롯한 로마 곳곳을 순례했고,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여러 나라의 합창단들과 함께 공연했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놀랍도록 아름다운 성가를 들려주었던 우리 합창단은 어디에서든 가장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특히 600여 명 합창단원 모두가 한데 모여 바오로 6세 홀에서 교황님을 알현했던 것은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정사라 단원은 합창단 대표로 CD 음반과 ‘한반도 일치와 세계 평화를 위한 희망을 노래하라’고 적힌 깃발을 교황님께 직접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로마에서의 순례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한인성당 신자들을 위해 연주회를 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가는 동안 여러 성지를 순례했고, 유럽의 겨울 풍경도 즐겼습니다. 인스브루크는 순례보다는 잠깐의 관광을 위해 들렀던 곳입니다. 눈 내리는 인스브루크는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이따금 합창단에게 즉석 공연을 요청하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공연을 위해 자리를 잡고 성가를 부르기 시작하면, 지나는 모든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모여듭니다. 시끄러운 거리의 소음은 완전히 멈추고, 아이들의 노래가 그 공간을 가득 메운답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의 음성이 천사의 그것과도 같다며 어김없이 커다란 박수와 환호로 화답하지요. 성탄의 여운이 남아있는 마리아테레지아 거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들의 노래가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거리 공연을 마치고 우리는 미사를 드리기 위해 예약해둔 성당으로 들어섰습니다. 북적이는 거리 한켠에 조용히 서 있는 작은 수도원 성당이었습니다. 나이 든 수사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셨습니다. 굽은 허리에 작은 키였지만, 인자한 눈과 미소는 이를 데 없이 맑고 고우셨습니다. 미사를 준비하는 조심스러운 걸음만으로도 그분의 성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성가와 함께한 미사가 끝난 후, 제의방에서 홀로 기다리던 수사님께서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얼굴은 뜻밖에도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지도 신부님께서 이유를 묻자, 수사님은 결국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아주 오래전, 제가 수도원에 들어오던 시절에는 성당에서 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밤낮으로 적막만이 가득합니다. 미사와 함께 봉헌되는 성가를 들어본 것이 십수 년도 더 되었어요. 까맣게 잊고 있던 합창단의 성가에 너무도 행복했고, 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우리 합창단은 그날, 오직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작은 공연을 열기로 했습니다. 수사님의 눈물이 멎은 자리에 웃음이 피어날 때까지….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