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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 (58)규칙이 문제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하)

참 빛 사랑 2021. 1. 28. 20:16


레지나와 요셉은 모두 우울과 무기력을 호소하며 친구가 없고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또한, 두 사람의 심리적이며 관계적인 문제의 근원에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전해 받았거나 혹은 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새겨진 가족규칙이 있었다.

레지나는 부모로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교육을 받았고, 요셉은 자신의 행동으로 가족이 고통받은 경험을 통해 “싸우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가족규칙은 두 사람의 삶의 방식과 대인관계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가족규칙을 가진 사람이 모두 부정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가족규칙을 통해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들이 오히려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지나와 요셉은 어린 시절 가족규칙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규칙을 성장하면서 수정 보완하지 못한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은 어떤 상황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지, 다양한 관계 상황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성장 과정에서 덧붙여져야 한다.

레지나는 대화 중에 친구가 딴청을 피우거나 자신의 말에 끼어들면 말문을 닫아 버리든가 친구를 멀리했다. 친구에게 화가 나거나 실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재미도 없고 관심도 없는 자신의 말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레지나가 대화 중에 늘 상대의 표정을 살피는 버릇이 생긴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가족규칙이 레지나의 대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요셉은 관계에서 늘 피해자가 되어야만 했다. 갈등상황이 벌어지면 자신을 양보하고 항상 타인에게 맞추며 살아왔다. 요셉이 사회로부터 고립된 이유에는 남과 싸워서는 안 된다는 가족규칙 때문이었다. 요셉에게 있어서 현대의 경쟁사회는 이미 자신이 살아갈 수 없는 삶의 자리였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경쟁과 갈등은 근본적으로 다툼을 유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레지나와 요셉은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 안에 존재하는 역기능적인 가족규칙, 즉 자존감을 낮추고 병리적인 대인관계를 맺게 하는 가치관과 신념체계를 건강하게 수정 보완하는 과정을 밟아 나갔다. 먼저 레지나는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강제성을 띤 명령문을 “나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라는 자율성을 띤 희망문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더 세부적인 통찰로 언제 피해를 끼칠 수도 있는지 혹은 어느 조건에서 불가피하게 피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지,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확인했다. 그런 상황과 조건에서 피해를 끼치는 것이 정말 타인에게 피해가 되는지도 탐색했다.

요셉은 “나는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명령문을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는 희망문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싸울 수밖에 없는 예외적인 상황과 조건들을 확인하고 그것이 진정한 싸움이었는지에 대한 개념도 다시 정리했다. 예를 들어 갈등하는 상황은 서로의 욕구를 조정하는 과정이지 그 자체가 싸움은 아닐 것이다. 요셉은 자신 내면의 상처가 모든 갈등상황을 싸움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갈등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해결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이해하면서 요셉은 점차로 세상을 향한 첫발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국가와 사회의 법과 규범도 특정한 사람이나 상황에 적용할 때에는 상황윤리(Epikeia)와 판례를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로 레지나와 요셉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계명인 ‘사랑의 율법’도 우리 각자의 삶의 환경과 상황에서 잘 적용될 수 있도록 자신만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