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 영상 보기 ▶신앙을 삶으로 선택한 사람들
밤이 깊어도 포르투갈 리스본총대교구 에스트렐라 대성당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대성당은 18세기 지어진 가르멜 여자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 수도원은 2023 리스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이후 청년·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이 됐다. 성당 불빛은 이 공간을 이용한 젊은이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조용히 그 뒤를 비춘다.
2025년 12월 9일 밤, 수도원에 들어섰다. 복도에서부터 구석구석 자리한 여러 방마다 젊은이들이 금세 눈에 띄었다. 대학생들이 모여 과제를 푸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태블릿으로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었다. 수다를 떨거나 간식을 나누며 친교를 다지는 청년들도 보였다.
건물 반대편에서는 주일학교 수업을 마친 어린아이들이 병아리 떼처럼 줄지어 교실에서 나왔다. 아이들을 기다리던 부모들은 두 팔 벌려 그들을 맞이했고, 재잘대는 소리가 건물 복도를 가득 채웠다. 밤이 되면 침묵 속에 자리를 지키는 여느 성당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향한 여정에서 역대 WYD 개최지를 찾아 그 열매를 조명하는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과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공동기획 ‘개최지를 가다’. 포르투갈 교회 마지막 편에서는 ‘리스본 WYD를 성공적으로 이끈 지역 사회의 헌신’을 따라가 봤다.

환대하는 교회로
“이곳에 오면 항상 친구들이 있어요. 따로 약속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죠. 예전엔 이런 공간을 찾으려고 멀리까지 가야 했는데, 이제는 가까운 곳에서, 무엇보다 올 때마다 환영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친구 두명과 함께 축구 경기를 보고 있던 주앙 페리 비달(22)씨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공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보니 가끔은 시끄럽다는 불평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렴 어떤가! ‘언제나 환영받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젊은이들은 이곳을 ‘사랑방’처럼 편하게 드나들고 있었다.
포르투갈 교회의 이 같은 변화는 리스본 WYD 이후 시작됐다. WYD를 통해 미래 주역이 될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교회로 거듭난 것이다. 보수 공사 비용 등 수도원 건물을 통째로 젊은이들의 공간으로 바꾸는 데는 큰 결단이 필요했지만, 젊은이들은 교회의 진심에 화답하듯 큰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을 지켜보는 본당 주임 두아르테 다 쿠냐 신부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쿠냐 신부는 “리스본 WYD를 준비하는 내내 나이 많은 사람들과 젊은이들이 팀을 이뤄 함께 일했던 모습은 매우 아름다운 세대 간 만남이었다”며 “이는 우리가 교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놨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도원 건물을 젊은이들에게 내어준 까닭에 대해 “본당은 자유롭고 활기찬 젊은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졌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밝혔다. 공간을 내어주며 교회가 다시 젊은이들과 함께 걷기 시작한 것이다.
쿠냐 신부는 청년을 위해 교회가 조건 없이 나선 이유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두 가지를 제시했다. “젊은이들은 교회에 활력과 열정을 가져다줍니다. 또 교회는 그들의 성장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청년 사목은 단순히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오락이 아니라 교육이며, 좋은 성인이 되도록 돕는 일입니다.”
나이가 찼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토양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 자란 청년들은 사회로 나가 또 다른 세대를 떠받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리스본 교회는 WYD를 통해 다시금 실감했고, 이를 이행하고 있다.


리스본으로 향한 선택, 국제 봉사자의 이야기
다만 이러한 변화는 WYD라는 단일한 사건만으로 설명되긴 어렵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포르투갈 교회 안에서는 WYD 준비 과정에서부터 파견미사 이후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이 존재했다. 그 중심에는 2만 5000여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가 있다. 특히 직장까지 관두고 먼 타지에서 온 국제 봉사자들은 ‘모두를 위한 WYD’의 마중물이 됐다.
넉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폴란드에 서 온 봉사자 도로타 드랍(34)씨도 마찬가지였다. WYD는 개최되는 국가의 젊은이들만을 위해 열리는 장이 아니다. 모든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자리인 만큼, 봉사자들은 국제적인 행사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각자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기꺼이 내어놓았다.
“봉사자로서 처음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저는 전혀 포르투갈어를 할 줄 몰랐습니다. 언제 점심과 저녁을 먹는지, 식사는 어떤 순서로 나오는지, 심지어 인사 방식조차 달랐던 걸요. 폴란드는 악수를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두 볼에 입을 맞추지요.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 사람들은 제가질문하면 항상 친절히 그 배경을 설명해줬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외국인이라 느끼지 않았습니다.”
기업·도시·교회가 하나된 리스본 WYD… 경제효과까지 챙겼다
WYD 봉사자에 파격 유급 휴가
기업도 WYD 의미 이해하고 독려
지방정부도 대규모 재정 지원
약 601억 원과 모든 자원 투입
5000명에서 2만 5000명으로

이렇게 다양한 이들을 하나로 묶은 인물도 있었다. 리스본 WYD 조직위원회 자원봉사자부 부장 마르가리다 마나이아(57)씨다. 그는 포르투갈 대형 유통기업 ‘제로니모 마르틴스’에서 인적자원 관리부장을 맡고 있었다. 슈퍼마켓 체인 ‘핑구두스’로 잘 알려진 대표 유통기업이다. 마나이아씨는 이곳에서 약 300개에 가까운 팀과 인사를 총괄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2019년 리스본 WYD 조직위원회로부터 요청이 왔다. 자원봉사자들을 관리해달라는 것이었다. 부서의 정확한 명칭은 ‘리셉션 및 자원봉사자부’였다. 마나이아씨는 “거절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처음 교회와 교황님을 직접 섬길 기회로 느껴져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마나이아씨는 주저 없이 “예”라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만 WYD 개막이 가까워질수록 직장 일과 봉사를 병행할 수 없게 됐다. 그는 과감하게 직장을 그만두는 길을 택했다.
진짜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유급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WYD에 전념하고 돌아오세요.” 제로니모 마르틴스의 페드로 소아레스 도스 산토스 최고 경영자는 마나이아씨에게 파격 제안을 했다. 그렇게 그는 2022년 1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급여와 복지는 그대로 유지한 채 WYD에 전일제로 헌신할 수 있었다. 마나이아씨에 의하면 포르투갈에서는 제로니모 마르틴스 외에도 이처럼 유급 휴가를 줘 직원들이 WYD에 자원봉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기업이 더 있었다고 한다.
마나이아씨는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100명 넘는 자원봉사자가 유급 휴가를 받아 WYD에 봉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포르투갈이 가톨릭 국가라고 말하지만, 미사에 나가는 이들은 매우 적었다”면서도 “탈종교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사회는 점차 WYD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어쩌면 리스본에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는 점을 기업들도 인식했다”고 말했다.

위기도 있었다. 자원봉사자가 2만 5000명 정도 필요했지만, WYD 개막 두 달 전까지 이에 한참 못 미치는 5000명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리 모집됐던 자원봉사자들이 다시 뿔뿔이 흩어지는 등 난관을 겪었다. 조직위원회의 주요 부서들이 요청하는 숫자에 턱없이 부족한 자원봉사자 모집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러나 불과 두 달 사이 2만 명이라는 자원봉사자가 추가로 모였다. 마나이아씨는 “WYD는 하느님을 경험하는 자리”라며 2027 서울 WYD를 준비하는 한국 교회에 진심 어린 제언을 건넸다.
“하느님을 믿으세요. 물론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선행되어야 할 것은 기도하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일어납니다. 그분이 자원봉사자를 원하신다면, 분명히 어디선가 찾아내실 것입니다. 또 자원봉사자들은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비행기 일정 등 개개인 사정이 매우 다르지요.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도시가 나선 WYD
기업뿐 아니라 지방정부도 WYD의 주요 축이 됐다. 리스본시는 WYD의 든든한 주요 투자자 중 하나였다. 2025년 12월 9일 저녁 리스본시청에서는 구유 축복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카를로스 모이디쉬 리스본시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리스본 WYD는 도시 역사상 가장 큰 행사였다”며 “시는 3500만 유로(한화 약 601억 원)라는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물류와 경찰·소방 등 모든 자원을 투입해야 했다”고 소회했다. 파견미사가 열릴 새로운 공간도 만들었다. 약 30개 축구장 규모의 테주 공원이다. 이곳은 원래 공터였다. 그러나 리스본 WYD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성대한 미사를 봉헌한 이후 전 세계인이 모인 만남의 장이라는 역사를 쓴 뒤 지역 주민들의 생활공간으로 거듭났다.
결코 작은 규모의 투자는 아니었다. 대회 후 2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그 결정에 후회는 없는지 물었다. 모이디쉬 시장의 답변은 짧고 명확했다. “물론이죠(absolutely!)” 모이디쉬 시장은 “만약 리스본 WYD 개최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투자할 것”이라며 “우리는 투자 대비 약 8.6배에 달하는 3억 유로(한화 약 5152억 4000만 원)의 경제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전 세계 5억 가구가 리스본 현장을 TV로 시청했는데, 이는 어떠한 광고로도 얻을 수 없는 효과였다”며 “WYD가 도시에 가져온 평화로운 분위기와 젊은이들이 희망과 미래를 얻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고 단언했다. 200만 명이 모이는 큰 행사는 도시의 치안 시스템을 다시 정비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 리스본 WYD에 대한 경제성 연구를 진행한 리스본대학교 경제경영대학(ISEG) 누노 발레리오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침체했던 지역 경제, 특히 음식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에게 리스본 WYD는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었다”며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과 맞물려 사회적 합의가 잘 이뤄진 것이 큰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경제효과가 단기적 성장에 그쳤다는 점과 리스본에만 편중된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발레리오 교수는 “생태적 영향 등 부정적 요소를 고려하면 전체 3억 유로의 경제효과 중 20%는 차감해야 한다”는 분석도 내놨다. 그러나 그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도 직간접적으로 여러 혜택을 받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며 “한국 등 대회를 준비하는 개최지들은 WYD를 통해 창출된 경제효과가 이후에도 활용되고 이어지도록 잘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다른 시작, WYD
리스본총대교구는 WYD를 통해 창출된 성과를 오늘날까지 이어가고 있었다. 리스본 WYD 재단법인 ‘여정’은 WYD 수익금을 가지고 지금까지 청년들이 기획하는 프로젝트에 투자·지원하고 있다. 이날 아침 리스본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흐린 날씨 속 카르니드 지역의 한산한 풍경은 얼핏 적막해 보였지만, 법인의 사무실만큼은 달랐다. 포르투갈 전역에서 젊은이들이 만든 제안서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법인의 마르타 피게이레도 상임이사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 “젊은이들의 새로운 여정을 이끄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질적으로 교구가 WYD를 통해 확보한 재정적 유산은 3500만 유로(한화 약 601억 원) 정도였다. 피게이레도 이사는 “포르투갈어로 WYD는 ‘청년의 여정’이라 불린다”며 “이에 교구는 WYD 유산과 열매를 지속시키고자 청년이 중심이 되는 프로젝트에 계속 투자해 새로운 희망의 주체 세대를 키워내는 법인 ‘여정’을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피게이레도 이사는 “교구는 리스본 WYD 본대회 기간 전 세계에서 온 젊은이들과 대화하며 오늘날 청년들이 직면한 주요 문제와 도전을 진단하는 작업에 착수하기도 했다”며 “다양한 국가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이 작업을 토대로 교회가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과제를 설정했고, 대회 이후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이를 극복하도록 돕는 ‘촉진제’구실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에 법인은 청년들이 지닌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공개 모집하고 있다. 주로 영성과 관련된 프로젝트들을 응모했는데, 자원봉사나 학교와 함께하는 활동과 같이 시민성에 관한 프로젝트도 있다. 피게이레도 이사는 “우리는 청년들이 자신과 하느님을 영성적으로 연결하도록 돕고, 그들에게 미래를 위한 기술을 제공하며, 사회에서 적극적인 시민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WYD에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수의 순례자가 등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많은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며 인건비를 줄일 수 있었던 것도 잉여금 발생에 도움이 됐다. 공공과 민간 지원도 마찬가지였다. 피게이레도 이사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우 정확한 예산 관리였다”며 “잉여금을 투자한 수익을 바탕으로 청년들이 기획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고, 연간 약 100만 유로(한화 약 17억 원)의 수익을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재단이 지닌 가장 큰 의미는 가톨릭 신자 청년들만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피게이레도 이사는 “우리는 ‘모두를 위한 교회’라고 강조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메시지를 따르고 있다”며 “공동선에 기반한 약 250개의 프로젝트를 신청받아 지원하는 과정에서 재단은 말 그대로 ‘희망의 상징’이 되어 청년들의 미래에 동반하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WYD는 일회성 행사가 아닙니다. 지금도 계속 살아 움직이고 있어요. 2027 서울 WYD에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리스본 WYD 여정은 이제 또 다른 도시를 향해 이어지고 있다. 끝이 아닌 시작으로, 포르투갈 교회가 보여준 젊은이 사목의 비전은 내년 대한민국에서 더욱 또렷해질 전망이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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