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엔 주로 묵나물을 먹다 보니 자칫 식탁의 색감이 가라앉기 쉽다. 맛은 있지만, 눈으로 먹는 즐거움이 반으로 줄어드는 계절이 겨울이다. 이때 식탁을 생생하게 만들어 주는 채소가 있다. 시금치다.
겨울에 나는 시금치는 따로 이름이 있다. 보통 농산물은 품종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이를테면 요즘 제철인 감귤은 크게 온주밀감과 만감류로 나뉘고, 온주밀감은 다시 조생·중생·만생종, 만감류는 한라봉·천혜향·레드향·황금향으로 분류되는 식이다. 그런데 시금치는 다르다. 평소엔 시금치지만, 겨울에는 섬초·남해초·포항초라고 부른다. 씨 뿌리고 자란 지역, 즉 고향 이름을 붙인 것이다. 전남 비금도(신안)와 경남 남해·경북 포항으로 시금치 고향 중 으뜸이다.
이들 지역 시금치는 바닷바람과 겨울 추위를 견디며 천천히 자란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당을 더 많이 저장한 까닭에 여름 시금치보다 단맛이 풍부하고 미네랄 성분도 더 많다.
우리 집에서 겨울 시금치가 특히 사랑받는 이유는 작은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여행을 남해로 간 덕분이다. 선물로 남해초를 한 봉지씩 직접 캐서 가져왔던 아이는 여전히 시금치를 좋아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금치밭의 기억이 잊히지 않았는지, 한동안 남해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면 시금치로 다양한 음식을 한다. 나물은 물론, 김밥·국·밥·샐러드 등 여러 음식을 연구했다.
사람들에게 소개한 시금치 음식 중 크게 호평을 받은 두 가지가 있다. 강황 가루를 넣은 밥에 시금치를 올린 ‘강황시금치밥’은 이름만 들으면 다들 낯설어한다. 시금치의 초록색을 유지하기 위해선 꼭 냄비에 밥을 지어야 한다. 냄비 밥을 귀찮게 생각하던 사람들도 쌀이 끓고 불을 줄이는 타이밍에 시금치를 넣는 순간 기대가 커진다. 뜸이 들어 냄비 뚜껑을 열면 밥의 향기와 색감에 다들 ‘와’하고 환호성을 지른다. 노란 밥에 초록색 시금치가 빛을 발한다. 이때 간장과 들기름을 넣어주면 완성된다. 여기에 김치와 김만 있으면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두 번째 음식은 유자소스 시금치롤이다. 살짝 데친 시금치에 새콤달콤한 유자소스를 올려 먹는다. 전채요리나 핑거푸드로 활용해도 좋은 음식이다. 시금치와 소고기로 만든 음식을 보고 소고기만 빼고 해본 음식인데 고기가 없어도 사람들이 좋아한다.
시금치를 데치지 않고 어린잎만 모아 샐러드를 만들면, 많은 이가 옥살산(수산)을 걱정해 자주 묻는다. 생으로 먹으면 신장결석 때문에 위험한 것 아니냐고. 시금치를 먹어 이런 질병이 생기려면 매일 생으로 1㎏ 이상을 장시간 섭취해야 한다고 한다. 특별히 신장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양한 방법으로 시금치를 즐겨도 좋겠다. 농민들 말에 의하면 1월 말 시금치가 가장 달다고 한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다양하게 시금치를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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