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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종합

순탄치 않은 그의 삶, 주님 만나 바뀌었다

참 빛 사랑 2024. 6. 23. 19:16
 


“이제 어려움이 닥치면 하느님과 성경 안에서 길을 찾겠습니다. 행복하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북향민 강태철(마태오, 59)씨는 지난 2일 주님의 자녀가 됐다.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힘겹게 탈북한 끝에 이 땅에서 주님을 만났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차별’과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장벽에 부딪혔고, 스스로를 죽음의 문턱까지 내모는 등 어려움이 컸다.
 

낯설고 힘든 남한에서 쓰러진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착한 사마리아인’을 자처한 주변 신앙인들의 도움이 컸다. 다시 빛으로 나온 그는 “하느님 자녀로 새로 태어난 만큼 신앙 안에서 희망을 잃지 않겠다”고 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아 신앙으로 새 희망을 얻은 그를 만났다.

강씨는 함경북도 회령시의 교육자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7남매 모두 교수와 판사, 150명 규모 공장 사장 등으로 잘살았다. 하지만 2009년 탈북해 중국에서 살다 2018년 먼저 한국으로 넘어온 딸로 인해 당국의 감시와 억압을 받기 시작했다. 도저히 살 길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강씨는 아내와 남은 자녀를 3년 안에 데려오겠다고 다짐하고, 2019년 5월 5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홀로 두만강을 건넜다. 잡힐 상황을 대비해 혼자 나선 것이다.

일주일 동안 산속에서 나물만으로 허기를 달랬다. 베트남에선 공안에 붙잡혀 온 길을 되돌아갈 뻔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중국·베트남·라오스·태국을 거쳐 3개월 만에 한국에 당도했다. “아, 이제야 살았구나!”

국정원 조사와 하나원 교육이 이어졌다. 그런데 불현듯 그의 말대로 “너무 많은 나이에 홀로 건너왔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고, 그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집도 배정받았고, 6개월 동안은 정부가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대우를 해줬다. 적응 기간 없이 강씨는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북향민 2명을 포함해 6명이 일하는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처음엔 감사한 마음으로 다녔지만 차별이 느껴졌다. 회식도 따로 했다. 다른 북향민 직원들과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공장에 취직해 20~30대 외국인 노동자들 틈에서 막노동했다. 새벽 4시경 출근해 종일 몸을 쓰고 밤늦게 돌아왔다. 몸이 망가지면서도 어떻게든 버티려 했지만, 나이와 북한 출신이라는 점이 또 발목을 잡았다.

공장에서도 나왔다. 그때 북에 남은 가족들이 자신의 탈북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홀로 텅 빈 집에서 서럽게 울었습니다. 술을 입에 댄 적도 없었는데, 술에 의존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습니다.”
 


생각보다 어둠은 크고 짙었다. 가족과 이별한 것도 컸지만, 자신 탓에 가족이 고통받았고, 남한에서도 그는 ‘이방인’이었다. 그렇게 허우적대다 생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그를 관리·담당했던 하나센터 이금안(마리아 아욱실리아)씨에게 한 연락을 끝으로 휴대폰 전원을 껐다. 만취한 채 잠을 청했다.

이씨는 경찰들을 대동해 굳게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행히 강씨는 살아있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이씨는 인연이 있던 박성재(살레시오회) 신부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정을 듣고 곧장 강씨 집을 찾은 박 신부는 그의 곁에서 함께 밤을 지새웠다. “새벽에 물을 마시러 부엌에 가는데 신부님이 누워 계신 거예요. 그렇게 온 밤 제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이씨는 강씨의 밀린 공과금을 모두 사비로 내줬다. 병원에도 입원시켜 치료도 도왔다. 지원받을 수 있는 혜택도 빠짐없이 전달했다. 주말 농장도 사비로 신청해 밭을 가꾸는 취미도 만들어줬다. 강씨는 이씨와 박 신부가 자신 곁을 지켜주고 있음을 크게 깨달았다. ‘아,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이 분들은 어째서 이렇게 나를 도와주는 거지?’

강씨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센터에 보냈다. 센터는 이씨의 노력을 인정해 정년 후 1년 더 일하도록 배려해줬다. 청소년 사목을 하고 있던 박 신부는 행사가 있거나 여행 갈 때마다 강씨를 불러 청년들과 함께하게 했다. 극장에도 곧잘 데려갔다. 최신 영화가 번쩍번쩍 상영되는 스크린을 바라보는 강씨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신부님과 이 선생님이 따르는 주님은 누구이실까?’ 자신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는 사제와 신자를 따라 강씨는 세례를 결심했다. 박 신부의 특별 과외(?)도 뒤따랐다. ‘나를 아낌없이 사랑해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그는 “세례 전날, 신앙인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설렘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 상황이 평화의 길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라 말했다.

“저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생을 포기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변할 수 있었던 건 사심 없이 헌신적으로 도와준 두 은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 차례입니다. 앞으로 이 은혜를 모두에게 평생 갚아 나갈 것입니다. 점점 멀어져가는 한반도 평화 해법의 실마리를 제 모습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밑에서부터 진심 어린 교류를 이어나간다면 분명 함께 웃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