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귀뚜라미가 소리높여 노래하는 가을이다. 간혹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 시원해서 바삐 옮기던 발걸음을 멈추고 팔을 벌려 한껏 바람을 맞이해본다. 지난 여름의 더위를 잊게 해주는 고마운 바람이다. 이렇게 가을은 오고 선선한 바람도 부는데, 올해를 지내면서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공통된 두려움을 읽게 된다. 입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뭔가 큰 위기를 우리들의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매주 금요일 세종로 사거리에서 기후행동 거리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나는 금요기후행동에 계속 참여하려고 한다. 지난 금요일에도 피케팅을 나갔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이전과 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피켓의 내용을 살피고, 눈인사라도 하고 가거아, 심지어는 피케팅하는 사진도 찍으면서 커뮤니티에 올리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바로 이것이다. 낮 12시에 세종로 사거리는 수많은 직장인이 붐비는 장소이다. 점심을 마친 그들의 손에는 한겨울에도 커피가 들려 있었다. 그러니 한여름에는 더더욱 플라스틱 일회용 컵이 들려 있어야 익숙할 텐데 사람들의 손에 컵이 없었다. 정말 신기해서 계속 보게 되었다. 나만 느낀 것이 아니라 피케팅에 참여하신 다른 분들도 느꼈다고 한다. 일회용 컵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침묵으로 외친 것은 ‘기후위기’인데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작은 일들을 찾아 뭔가를 시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케팅을 마치고, 손수레에 피켓을 실어서 끌고 오는데 건장한 청년 둘이 내 뒤를 걸어오면서 주고받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야, 나 이제는 일회용 컵 못쓰겠어.” “그래, 지구가 이런 상태까지 되었는데 뭐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이런 대화를 거리를 지나면서 젊은이들이 주고받는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바로 이런 것이 거스 스페스가 말한 ‘영적이고 문화적인’ 전환일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억지로 실천하는 것은 그 누군가가 없는 자리에서 쉽게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를 스스로 깨닫고, 그것이 참된 성장이자 참된 성공의 방향임을 주변에 퍼트리는 것은 계속 번져갈 것이다. 사람들 속에서 가치관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명품을 가진 것이 부끄러워지고, ‘먹방’으로 욕구를 부추기는 방송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지금 이 위기가 얼마만큼 위험한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알기를 원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묻게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자신의 취약함으로 선택한 그 길에서 돌아서서 ‘살 길’을 선택할 것이다.
마치 둘째 아들의 모습처럼, 지금 우리의 모습은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것을 탕진한 그 상태이다. 여기서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 우리 자신을 현혹하는 수많은 유혹이 있지만 우리는 돌아설 수 있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먼저 우리가 가던 그 길에서 돌아서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를 통하여 새로운 백성을 일으키겠다고 하셨을 때에 모세가 드린 기도를 우리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주님, 당신 백성을 살려 주십시오. 주님, 당신 백성을 기억해주십시오.” 자기 안위가 아닌 백성의 안위를 염두에 둔 모세의 이 기도를 오늘 우리도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바칠 수 있기를 청한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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