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신부 : 사실 제 강의의 기본은 우리 가톨릭의 기본교리였고 특히 희망은 현대의 가장 필요한 주제라고 생각했어요.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을 표현할 때 “희망이 없는 곳”으로 표현한 대목이 무척 인상적이었거든요. 현대를 사는 신자들을 위해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 해답을 찾고 희망을 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느님 나라는 이미 현재에도 시작해야 하는데 삶에서 희망이 없다면 이미 지옥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거죠.
허 신부 : 신부님은 어느 땐 개신교에서 부흥회를 하듯 올림픽공원의 체육관을 통째로 빌려서 수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차 신부 : 저는 초대 교회처럼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엄청난 성령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때론 그러한 초월적 체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허 신부 : 신부님이 스타강사(?)가 되면서 사실은 많은 오해와 비난도 받기도 했지요. 우리 교구청 내에서 그렇게 타 교구 사제가 와서 대규모 집회를 해도 되느냐는 논란도 있었어요. 정진석 추기경님이 “우리가 못하는 것을 차 신부가 와서 해주시니 고맙게 생각하라” 하셔서 그다음엔 조용해졌지요.(웃음) 나는 신부님이 강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무리해서 전국에 강의를 다니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건강 악화로 휴양도 하고 그러셨잖아요?
차 신부 : 제가 강의를 거절하면 조금 유명해져 교만해졌다고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떤 곳에서 불러도 힘 닫는 데까지 다녔어요. 하느님이 쓰실 만큼 쓰시겠죠.
허 신부 : 나는 가을에 잎이 떨어질 때면, 전주교구 김 안토니오 신학생이 인스브루크(Innsbruck)에서 등반 도중 실족사해서 부모님도 못 모시고 이국땅에서 장례 미사를 드렸던 생각이 자주 나요. 그때 차 신부님과 함께 운구 행렬을 따라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면서 이야기했던 기억도 나고요. 나는 그때의 선종 상본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상본에 김 신학생의 자작시도 인상적이었어요. “혼자 있음이 / 때로는 축복 같은 것이어서 / 앎 속에만 피상적으로 / 그분을 따르고 있다는 / 자위의 허물을 벗어버리게 한다. / 혼자 있음이란 스스로를 한없이 작은 존재로 / 생각케 하는 은혜를 낳고 / 겸손의 마음을 지니게 한다.” 참 좋은 시였어요. 외롭고 나약한 존재인 우리네 인생은 가을날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과도 같다고 생각했어요.

차 신부 : 나도 그때가 많이 생각나요. 김 신학생은 전에 돌아가신 김정훈 부제 옆에 누웠고 우리들은 꽃 한 송이씩 봉헌했던 것이 기억나요.
허 신부 : 그때 신부님이 신학교로 돌아오면서 말했었죠. 오늘은 우리는 이렇게 울고 슬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잊힐 것이고 우리도 떠날 것이라고 했죠. 라틴어 속담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를 인용하면서 죽음은 언제 어느 때 올지 모르니 잘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나는 차 신부님을 만날 때마다 그의 안색을 보고 점차 과로로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어느 순간부터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차 신부님은 2019년 11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차 신부님은 자신의 길을 충분히 달려갔고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빛을 비추어 주었다. 장례 미사에서 교구장 정신철 주교님은 차 신부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를 신자들에게 전했다. 차 신부님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늘 희망을 품고 살아갔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차 신부는 “저는 모든 것을 하느님 뜻에 다 맡깁니다”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동안 고생을 같이한 직원들을 걱정하며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교구장님께 부탁했다고 한다. 그의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마음과 인성을 느낀다. 차 신부님이 남겨놓은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는 작은 씨앗이 되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큰 열매를 맺게 할 것이라 믿는다. 언제나 유머가 많았던 차 신부님을 생각할 때마다 그의 특유한 미소와 옆집 아저씨 같은 느릿느릿한 말투가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웃어본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