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세의 나이에
이렇게 또 한해가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최양업 부제는 1849년 4월 15일 부활 제2주일에 상해 장가루(長家樓)성당에서 강남대목구장 마레스카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다.(일부 학자들은 최 신부의 사제서품 장소를 상해 서가회성당 또는 김가항성당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인 두 번째 사제가 탄생하는 은총의 자리였다. 최양업은 부제품을 받은 후 5년 만에 만 28세 나이로 사제가 됐다.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메스트르 신부는 마치 전보를 치듯 단 두 문장의 짧은 편지를 리브와 신부에게 보냈다. “마침내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지난 주일에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가 곧 신부님께 편지를 보낼 것입니다.”(메스트르 신부가 상해에서 1849년 4월 17일 자로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아직 정확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메스트르 신부가 1848년 9월부터 최양업 부제와 함께 페레올 주교가 정한 백령도로 갈 여행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지시가 담긴 편지에 페레올 주교가 최양업의 사제 서품을 허락하는 내용이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백령도 여행을 떠나기 보름쯤 전 최양업 부제가 사제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백주일(부활 제2주일)에 지극히 공경하올 마레스카 주교님으로부터 저는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토록 고귀한 품위에 언제나 합당한 자로 처신하게 되길 바랍니다. 저의 미천함과 연약함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크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너그러우신 하느님의 자비로 그 짐은 아주 감미롭고 고무적인 것인 만큼, 지극히 무능하고 가난한 제가 날마다 지극히 존엄하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미사 성제를 드리고, 온 세상의 이루 다 평가할 수 없는 값진 대가를 날마다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권능을 받았음은 큰 위로입니다.”(같은 편지에서)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