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골손님의 또 다른 이름, 가족
샵 오픈 30분 전, 윤 원장이 미용 가위의 날을 손으로 잡아 감싼다. “가위가 날씨에 따라 날이 선 정도가 달라 날을 잡아 온도를 조절하기도 해요. 가위는 머리를 자를수록 날이 서 좋고, 빗도 오래 쓸수록 좋아요.”
헤어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선 지 30년, 그래도 첫 손님의 머리를 해줄 때의 긴장감과 설렘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긴 머리를 가진 여성 분이었는데 2시간 넘게 머리카락을 잘랐어요. 너무 긴장했죠. 그때 인연이 되어 20년 넘게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죠.”
윤 원장의 손님들은 거의 20년 이상 된 단골들이다. 윤 원장이 손님에게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을 알아서 찾아주기 때문이다. 손님의 두상도 알고 좋아하는 스타일에도 훤하다. 그러다 보니 손님이 의자에 앉아도 머리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살다 이사 간 분들도 지방에서 많이 오세요. 해남에서 오시는 분도 있고,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시는 분도 계세요. 단골손님과는 주로 건강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여기가 편하니까 다른 곳을 못 가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손님도 있다. 손님은 어릴 때부터 두통이 심했다고 말하곤 했다. 윤 원장은 흘려듣지 않고 “MRI 찍어라, 별일 아니면 내가 돈을 주겠다”고 권유했다. 검사 결과 지주막하 출혈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다행히 건강을 되찾으셨죠. 손님 중에는 의사분도 계시고, 좋은 병원이 있으면 연결해 드리기도 해요. 어릴 때 샵에 온 친구들이 성인이 되어 시집, 장가가서 아이를 낳고, 대학 보내고…. 김장을 담가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손님들과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이죠.”

하느님과 인연의 시작
윤 원장 집안은 독실한 개신교 집안이다. 윤 원장에게 아내가 계속 성당을 가자고 졸랐지만 개종하지는 않았다. 아내에게 미안함에 가끔 불편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 사달이 났다. “아내가 뇌 쪽 혈관이 터져서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아내가 믿는 하느님에게 기도를 했죠. ‘살려만 주시면 세례도 받고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현장에서 98%가 사망하고 1%가 병원에 가다 숨을 거둔다는 위험한 상황, 병원에서도 야심한 밤이라 수술할 의사가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때 한 단골손님의 남편이 뇌수술 전문의인 게 떠올랐다. 새벽에 전화를 걸었고 손님은 윤 원장을 돕기 위해 가족처럼 나섰다. 아내는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다.
아내가 퇴원 후 식탁에 놓은 말씀 달력에서 한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이렇게 모두 그의 집과 재산을 멀리 털어 버리실 것이다.”(느헤 5,13) 놀라웠다. 아니 무서웠다. 윤 원장은 그 길로 예비 신자 교리반에 등록하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에 제 옷 입는 스타일이 난해했어요. 사슬이 달린 옷을 입고 교리실 맨 앞에 앉아 신부님을 뚫어지라 보며 교리를 열심히 들었죠. 신부님이 ‘도대체 뭐 하시는 분이냐’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머리 하러 한 번 오시라고 했죠.”
윤 원장과 사제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고, 소문이 나며 샵을 찾는 사제들이 늘었다. 많을 때는 300여 명, 지금은 150여 명의 사제가 윤 원장의 샵을 찾는다. 염수정 추기경과 교구 총대리 손희송 주교도 윤 원장의 단골이며, 고 정진석 추기경도 교구청과 혜화동 주교관으로 찾아가 머리를 손질했다. 처음 샵을 찾는 사제들은 선후배 사제에게 “가서 어떻게 해달라고 하면 되냐”고 묻기도 한다. 답은 늘 똑같다. “그냥 앉아만 있어라.” 샵을 정리하던 윤 원장이 멋쩍게 말했다. “한 신부님이 우스갯소리로 본인이 믿는 분이 딱 세분 있다 말씀하시더라고요. 하느님, 성모님, 그리고 원장님.”
주말에 종일 샵에서 일하지만, 주일 새벽 미사를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본당에서 활동은 못 했지만, 천주교에서 하는 공부방, 쉼터 등에서 미용 봉사도 많이 했다. 윤 원장은 “아내가 신부님들 만나고 제 성격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고 웃었다. 요즘은 은퇴 후의 삶도 고민 중이다. “여성 헤어디자이너면 나이 들어서 동네에서 미용실도 운영하지만, 남자의 경우는 은퇴가 빠르더라고요.”
오전 11시, 첫 손님이 의자에 앉고 윤 원장이 가위를 든다. 손님의 머리카락을 향해 뻗는 손에 주저함이 없고, 손님 표정에는 평안함이 배어난다.
“머리 끝나고 손님이 환하게 웃을 때 가장 행복해요. 아, 은퇴 후에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신부님들 머리 손질해드리며 살고 싶습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