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아가 성음악이 쇄신되고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재정에 대한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작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어느 본당에서 성가대뿐만 아니라, 오르간 반주까지 중단시키고 미사를 봉헌하면서 주례 사제가 교우들에게 “미사가 참 조용하니 좋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오르간 반주조차 없는 성탄 미사에서 교우들이 과연 성탄의 기쁨을 제대로 느꼈을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돈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한 기업이 어디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지를 보려면 어느 분야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지 살펴보면 된다. 본당이든 교구든 인건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분야는 어디일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본당 사목구는 “성찬의 공동체”이며 “성찬은 본당 형성의 살아 있는 원천”(「평신도 그리스도인」 26항)이라고 하셨다. 한마디로 본당의 존재는 미사 전례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당 재정의 일차적인 투자 고려 대상은 당연히 미사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합당한 자격을 갖춘 성음악 전문가에게 소정의 사례를 지급하는 것은 그저 소비적 인건비가 아니라, 아름다운 전례와 교우들의 신앙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투자이다.
「성음악 지침」에서도 “오르가니스트나 성가대원과 그 지휘자, 악기 연주자… 그리스도교의 정의와 애덕 실천은 이들에게 법 조항과 지역에서 인정된 규정에 따라 적합한 임금을 주도록 요구한다”(101항)고 했다. 실력 있는 가톨릭 음악가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개신교로 개종하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노동법을 세심히 고려하면서 음악으로 먹고사는 전문가에게 자원봉사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해서는 안 된다.
성 비오 10세 교황께서는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범람과 민족주의의 태동, 전자음악 및 재즈 음악의 출현, 제3세계 음악의 유입 등으로 인해 전통 성음악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 속에 1910년에 교황청 성음악학교를 설립하셨다. 이에 발맞춰 교회의 많은 문헌들이 “성음악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전례헌장」 115항)을 권했다.
즉 성음악 교육은 결코 다른 교육기관에로 유보할 수 없는 분야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미사 중에 기껏해야 성가 몇 곡 부르는 것뿐인데 굳이 돈 들여서 전문가를 쓸 필요가 있을까?” 오늘날 성음악의 위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를 막론하고 인터넷의 발달에 기초한 소위 ‘덕후’가 성가 분야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전문가와 강적들」이라는 책을 쓴 톰 니콜스는 이를 ‘전문성의 종말’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성음악 고등교육기관의 불필요성으로 이어지며, 이 ‘전문성의 상실’은 성가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나 편의주의에 빠지게 하거나 혹은 다른 음악에 종속시키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고립시켜 버린다. 이는 성음악적 가치의 상대화를 초래하고, 신학교 교육의 결핍은 이를 가속화 시킨다. 성음악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목자나 성가대 지휘자는 개신교나 세속 음악의 사용에 거리낌이 없다. 여러 교황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조차 왜 성음악 고등교육기관을 강조했는지 새겨보아야 한다.
끝으로 방송 미사에 대해 덧붙이고 싶다.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성가에 대한 미디어의 역할은 더욱 증대되었고 특히 방송 미사를 통해 가톨릭평화방송의 역할은 참으로 지대해졌다. 다시 말해 방송 미사는 마치 미사 전례의 표준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커졌으며, 거기에서 부르는 성가도 또한 모범이나 표준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말이다.
이는 또한 어떤 성가를 통해 이 시대에 걸맞은 신자들의 성화를 어떻게 도모할 것인지에 대한 방송국의 책임 또한 그만큼 막중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송국은 이런 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평화방송은 전례와 더불어 성음악에 대한 전문가 그룹이나 위원회의 지원이나 자문을 요청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갖추거나 이와 같은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