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경 유숙지는 어디일까
그럼, 페레올 주교가 2개월여 간, 김대건 신부가 1개월 남짓 머문 은진 곧 강경 유숙지는 어디일까? 김대건 신부는 1846년 6월 26일(병오년 윤 5월 3일) 포도청 네 번째 공초에서 “저는 교우를 만나 보고자 작년 8월에 이재용(이재의 토마스를 말함), 임성룡과 함께 은진 구순오의 집에 가서 머물렀는데, 임가가 배를 사서 함께 배를 타고 돌아왔으므로 호서의 산천을 역력히 기억하여 그렸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김대건 신부는 그와 임성룡이 묵은 강경 유숙지가 구순오의 집이었음을 명확하게 밝힌 것이다.
하지만 페레올 주교가 머문 강경 집은 이 글 맨 앞에서 소개했듯이 방 두 칸짜리 작은 초가였다. 따라서 페레올 주교와 김대건 신부가 강경에서 머문 곳은 한 집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집임을 짐작할 수 있다. 환전객주 구순오의 집에는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기에 페레올 주교는 구순오가 마련한 안전 가옥에서 생활했을 것이 분명하다. 페레올 주교는 상해에서 떠나기 전에 산 유럽산 아마포를 구순오에게 내놓고 2배의 수익을 올려 그 돈으로 생계비를 충당했다. 선교 자금으로 가져온 중국 은괴도 구순오의 도움으로 조선 은괴로 녹여 현금화할 수 있었다.
김대건 신부가 머문 구순오의 집은 오늘날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홍교리 101-1, 102-1, 103-1 일대이다. 고 오기선 신부가 1965년 10월 3일 구순오의 증손녀 구용녀(안나)씨의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구순오의 집은 1846년 김대건 신부가 체포된 후 구순오 가족이 피신하면서 압수, 매각됐다.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의 한양 거처를 완벽하게 준비한 후 강경으로 내려왔다. 페레올 주교와 김대건 신부는 1845년 12월 중ㆍ하순 약 200㎞의 길을 걸어서 한양에 들어왔다. 둘은 한양에 거주하는 신자들을 사목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그해 연말 두만강을 통해 조선 입국을 시도하는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를 맞을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