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건 부제의 의아한 행동
김대건 일행은 오송에서 한 주간을 지내고 6월 4일 상해로 들어갔다. 영국인 둘이 동행을 원해 김대건은 그들의 배로 상해로 갔고, 조선 신자들은 중국 배에 예인된 라파엘호를 타고 뒤따라 갔다. 김대건 부제는 상해에서 영국 영사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청나라 관리들은 영국 영사의 보호를 받는 김대건에게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김대건은 가마를 타고 영국 영사가 마련해준 중국인 교우 집에 우대를 받으며 머물렀다.
하지만 동행한 조선 신자들은 상해 항에 정박해 있는 라파엘호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수천 명의 군중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삽시간에 상해에 괴소문이 퍼졌다. 조선인들이 영국인들의 억압으로부터 중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왔으며, 그들이 오송에 도착하자 그들을 향해 대포 20발을 쏘았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었고, 머리털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는 소문이었다. 또 다른 소문은 그들이 조선을 점령하기 위해 프랑스 두목들을 데리러 왔다는 것이었다.
소요를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소문을 들은 예수회 고틀랑 신부는 급히 김대건을 찾아갔다. 고틀랑 신부는 우선 상해까지 라파엘호를 예인해온 산동 배 선장과 타협해 400원을 주고 돌려보냈다. 김대건에게 집주인 가족이 청나라 관헌들에게 화를 입을까 겁을 먹고 있으니 그 집으로 다시 가지 말고 조선 신자들과 함께 생활하라고 타일렀다. 그리고 조선 신자들에게 가장 급한 생필품을 사는 필요한 돈을 김대건 부제에게 주었다.
김대건 부제의 오송과 상해에서의 태도를 보면 참으로 의아하다. 그는 힘 있는 유럽인들과 살갑게 지내지만, 생사고락을 함께한 조선 신자들을 부두에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중국인 관리들에게 유럽인들과의 친분을 내세워 자신을 대우해 달라고 요구했다. 고틀랑 신부는 “중국인들에게는 청해서는 안 되고 명령해야 한다”면서 김대건 부제의 태도를 두둔했다. 요즘 같으면 인종차별적 행동이라고 지탄받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과 중국인에 대한 김대건과 최양업 신부의 인식과 태도에 대해선 좀 더 후에 다루겠다.
김대건 부제는 상해에서 마카오에 있는 페레올 주교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린다. 이 편지를 받은 페레올 주교는 조선 선교사로 임명된 다블뤼 신부와 함께 1845년 7월 17일 홍콩으로 간다.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는 홍콩에서 7월 27일 배를 타고 출발해 8월 8일 상해에 도착해 김대건 부제와 상봉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