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마 농부이신 부모님께서 늘 아침 일찍 일어나셨기 때문에 부모님을 따라서 일어났던 것이 습관이 된 듯하다. 아버지께서는 새벽부터 방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다. 불을 지피고 계신 아버지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 타들어 가는 불을 지켜보았다.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새로운 하루를 여는 일을 그렇게 시작하였다. 언니들은 모두 자고 있었지만 나는 아버지를 따라 일어나 그 곁에 함께 하고 싶었다.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좀 더 자~”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마음 깊은 곳에 계속해서 자라고 있었던 것이, 늦둥이로 태어난 내가 봤을 때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어떻게 해서든지 함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그러니 수녀원에 와서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하기 위해 성전을 찾는 것은 나에게 별 어려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궁이 불 앞에 아버지와 함께 머물렀던 그 시간과 성령의 불을 느끼며 하느님 아버지 곁에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오버랩 되며 평범한 일상이 하느님과 함께한 순간들로 여겨져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부르심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다.
세례받은 이로서 하느님 아버지를 찾고 머물며 따르는 삶은, 일찍 일어나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가져다주셨다. 잠에서 깨어날 때 꿈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무의식 속에서 자칫하면 놓칠 수 있는 생각이나 꼭 기억해야 할 무엇을 되뇌며 일어나곤 한다. 그것은 주로 성경 말씀이나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의 어떤 뜻을 알게 한다. 그러니 이른 새벽 문득 나의 정신을 일깨우는 이 말씀은 항시 나를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도록 하곤 한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은 각각의 모든 사람이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으로 이미 찾아오셨고, 만나고 계시다. 불을 때는 아궁이 앞에서, 주방에서 밥할 때, 땅과 생명을 돌볼 때, 사람들을 가르칠 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만날 때, 난민과 이탈자들의 머리 둘 곳 없는 상황에 함께 할 때, 노동자와 소수자들의 절규에 함께할 때, 총부리 앞에서도 자유를 외칠 때, 이 모든 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그 방식대로 우리 곁에 함께 하신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공통적인 원리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이다. 이른 새벽부터 식은 구들장을 덥히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신 아버지의 마음에는 어머니와 우리를 위한 사랑이 있었고, 아버지 곁을 지켰던 내게도 늙으신 아버지 옆을 지키고 싶었던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있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성호경을 하면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수시로 고백한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법은 서로를 향하는 위타적인 사랑으로 나타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친교 방법이다. 내 자신, 공동체의 안위만을 위하는 사랑은 이 사랑법과 다르다. 타인,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잔칫집에 술이 떨어져도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 된다. 도움을 주는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이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때’를 타인의 필요 안에서 알아보시고, 나아가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눈에는 의미 없어 보이고, 일상적인 일이지만, 주님과 누군가를 위하여 그 일을 할 때에 ‘기적’이 일어난다. ‘현실’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향한 득과 실을 철저히 이해타산하는 자리에는 ‘기적’이 일어날 수 없다. ‘나’를 위한 채움은 기를 써도 계산한 만큼만 얻을 수 있지만, ‘타인’을 향한 채움은 항상 흘러넘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물을 포도주가 되게 하신다. 우리의 일상이 당신 백성에게 필요한 양식이 되게 하신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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