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리스도 신앙인은 해마다 사순절에 세 가지를 훈련합니다. 바로 ‘기도’와 ‘자선’과 ‘단식’입니다. 이 세 가지는 이미 여러 번 말씀 드렸듯이,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를 위해 필요한 훈련입니다.
‘절제’는 동양에서만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중요한 덕목의 하나입니다. 절제는 용기, 현명, 정의와 더불어 사추덕(四樞德)의 하나입니다. 절제는 기쁨과 쾌락을 악이나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취급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는 자신의 주체성을 위한 덕목이요, 자신의 행동과 말에 있어서 자신이 꼭두각시가 아니라, 주인공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기 위하여 필요한 자질입니다.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훈련 가운데 가장 좋은 방법은 ‘단식’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식욕을 절제하는 것이 가장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욕은 한 달 두 달을, 사람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기간을 참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명예욕은 4년이나 5년이 걸리는 선거 때를 기다리며 오랜 기간을 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절제라는 덕목을 수양하기 위해 우리에게 단식의 훈련을 제안하셨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단식을 제안하시기 전에 몸소 사십 일간 단식을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범은 결국 당신의 행위에 대하여 당신 자신이 주체자였으며, 진정한 자유인이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악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선한 일인 것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절제는 의지에 속한 문제입니다. 약한 의지를 지닌 사람은 강한 의지를 지닌 사람보다 더 많은 훈련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강한 의지가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선한 의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단식은 먹는 행위의 주체가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이 게임을 해야 하는 것이지, 게임이 청소년들을 놀이감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절제하지 못한 성욕으로 추락한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절제하지 못한 욕심으로 비참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무절제한 행동은 우리로 하여금 주체성을 지키지 못하게 하여 예상치 못한 혼란과 불결한 생활의 노예로 전락시킵니다.
단식을 비롯한 절제는 우리 자신을 자유인이 되도록 합니다. 일에 자유롭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도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원주교구민들이 올 한해 단식을 통한 훈련을 통하여 절제의 덕을 닦아, 우리 행동을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가 실행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코로나-19로 여러 가지로 어렵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내적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