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7월 5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문화관에서 ‘가정의 미래, 교회의 미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여기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K소장은 ‘한국 가정의 위기 진단- 이혼 현상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고 나는 이 발표에 대한 논평자로 참석했다.
K소장은 한국 가정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이혼율이 높아지고 가정이 해체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가부장적인 가정문화와 가정폭력을 꼽았다. 그는 전통적으로 남계 혈통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를 고수하는 한국사회가 점차 새로운 양성평등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혼율이 자연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였다. 게다가 남성 중심의 사회적 특권을 누리는 남성들은 오직 여성에게만 가사와 양육에 대한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았다. 그 결과 평등한 가정 문화를 정당하게 요구하는 여성들에 대한 정서적이며 신체적인 폭력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결국, 가부장적 문화와 가정의 폭력이 이혼과 가정해체를 급속하게 진행시키는 중요한 원인으로 제시됐다.
이 주제발표에 대해 나는 남성 중심의 가족관과 가정폭력이 가정 붕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교회는 사회문화적 원인보다는 좀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원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며 다소 이상주의적 논평을 했다. 내가 생각한 근원적 원인이란 가정과 혼인에 대한 세속주의적 가치관에 있었다. 자본주의의 산물인 물질만능사회 혹은 소비사회에서는 무엇이든 상품화하려는 경향을 지닌다. 혼인도 선택했다가 원하지 않으면 다시 폐기할 수 있는 상품처럼 여겨질 수 있다. 교회는 이러한 세속주의적 가치관을 복음 정신으로 변화시키고 가정이 상품화되어가는 풍조를 그리스도교적 혼인관으로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교회는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을 더욱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혼인의 단일성’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제48항에는 “창조주께서 제정하시고 당신의 법칙으로 안배하신, 생명과 사랑의 내밀한 부부 공동체는 인격적 합의로 맺은 결코 철회할 수 없는 계약으로 세워진다”라고 천명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강조하시면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4-6)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의 원론적 논평에 대해 K소장은 교회의 사목적 돌봄은 좀 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 교회가 복음 정신과 양성평등의 가치관에 기초하여 가정폭력을 근절하는 데 힘쓰자는 것이었다. 이혼한 가정 안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가정폭력이었다. K소장은 실제로 가정폭력이야말로 성가정을 이루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며 동시에 가정해체를 가속하는 가장 핵심적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이 심포지엄을 통해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겠다고 사제가 되었지만, 정작 한 분 한 분의 인생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가정 안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고, 몇몇 가정의 폭력적 상황은 예외적 사건인 줄 알았다. 과잉 일반화를 경계하면서 나는 대부분 가정이 그래도 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실로 믿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현실이었다. 상당히 많은 가정에서 서로 폭력의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도 모른 채 폭력이 대물림되고 있었다.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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