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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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17. ‘때’

참 빛 사랑 2021. 11. 16. 21:02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쌀쌀해지는 걸 보니 가을이 깊어지고 있나 보다. 그런데 문득 들판을 보니 추수가 끝난 논에는 철새들이 날아가다가 요기할 이삭만이 짚더미로 남아 겨울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딱 그 사이에 있다. 이때에 밭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물이 있다. 배추이다. 우리 집 황구 노을이도, 백구 땅이도 집 밖으로 끌고 나오던 잠자리를 슬슬 안으로 물고 들어가는 것을 보면 추운 때가 왔다는 것인데, 배추는 여리디여린 잎사귀를 동글동글 포개어 밭 한가운데에서 건강한 초록빛으로 더 크게 빛나고 있다. 이때에 거두는 배추와 무는 다른 계절에 수확할 때보다 더 맛나다. 서리를 맞고 얼었나 싶다가도 다시 한낮의 햇빛으로 녹여가며, 초록의 제 몸을 그렇게 보존하고 있는 배추를 보게 되면, 농부는 김장 때가 다가왔음을 안다. 사실 농부에게는 김장이 끝나야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니 이때를 기다리며 준비해온 것이다.

농부는 ‘때’에 대하여 아주 민감하다. 바람과 햇빛, 그리고 비와 눈, 계절이 가져오는 모든 것으로부터 작물이 어떻게 자라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변화들에 대하여 눈여겨보고 그에 필요한 일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모든 우리의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렇게 이루어진다. 젖을 먹이던 아이에게 때가 되면 이유식으로 바꾸는 것처럼 어떤 때가 되면 변화를 읽고 응답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 또 교회 안에서 요청되는 응답도 어떤 ‘때’를 직시하는 응답이었음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지구적인 차원에서 지구시민으로서의 의식으로 어떤 ‘때’를 의식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의식 있는 종교인들이나 소수의 환경단체가 기후위기에 대하여 부르짖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기후위기에 대하여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연예인들이나 기업, 정치인들 모두가 이 위기에 대응하는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다. 정말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는 무심해서는 안 될 ‘때’가 된 것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때’를 의식하고 있다. 바로 ‘시노달리타스’를 말하며 함께 걸어가자고 모든 믿는 이들을 초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시노달리타스의 이미지는 종말을 향해 걸어가는 하느님의 온 백성의 무리가 떠오른다. 거기에는 세상 곳곳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의 사랑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평신도들과 살아 있는 불씨를 들고 하느님 백성들 사이사이에서 불을 붙여주는 수도자들과 이 백성들이 허기질 때마다 사랑을 다 해 빵을 쪼개어 나눠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에 참여하도록 도와주는 사제들이 있다.

나는 가톨릭기후행동에서 마련하는 교육의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교육 중에 있었던 그룹 나눔에서 한 형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교님께서 한 마디만 해주시면 우리 신자들이 정말 잘 따라갈 수 있을 텐데, 왜 말씀을 안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한 자매님이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셨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제는 누가 가라고 해서 가는 때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내가 문제의식을 느끼면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묵묵히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그런 체험을 여러 차례 해왔고, 이것은 교회의 분위기도 바꿔주고, 나아가 학교나 사회의 정책적인 부분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해주기를 바라던 때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때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시노달리타스의 정말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걸어가는 주체임을 의식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친교’ 안으로 들어가는 이 길에서 각각의 주체들이 노래하며 걸어가는 길이다.

교회가 시노달리타스를 말하며 우리 모두에게 함께 걸어가자고 초대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미 문 앞에 오셔서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누가 열어주기만을 기다리던 마음을 돌리고 일어나 우리 스스로 문을 열어드리는 주체들이 되어야 한다. 정말 이미 문 앞에 우리 주님이 기다리고 계시다. 오늘이 바로 우리가 문을 열 ‘그때’이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