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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사도직현장에서]가출 생각하는 이들에게 내일은 없어요

참 빛 사랑 2021. 11. 9. 20:11

은성제 신부(서울대교구 청소년국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 서울A지T)

▲ 은성제 신부

 

서울A지T라는 사도직 현장에서 웃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직원도 2명밖에 없는 데다 전체가 휴가 중이었습니다. 저는 약속이 있어서 외국에서 오신 신부님을 모시고 성지순례를 준비했습니다. 올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탄생 200주년인지라 솔뫼와 신리성지, 합덕성당에 함께 갔습니다. 순례를 마치고 솔뫼성지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신부님, 저는 ○○본당 보좌신부입니다. 저희 성당 자모회장님이 도움을 청합니다. 자모회장님 지인의 자녀가 가출해서 이 친구를 쉼터로 보내고 싶다고 합니다. 지인은 천주교 신자는 아니고요. 재혼한 상태이고, 그 친구가 아버지랑 살고 있는데 폭력이 매우 심하다고 합니다.” 그 친구의 가출 사유는 아버지의 폭력이 너무 심해 견디다 못해 도망쳐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저도 직원들도 모두 휴가 중이었기 때문에, 일단 그 친구를 하룻밤만 지인 댁에서 보내게 하고, 다음날 오전에 제가 그 친구를 만나 쉼터로 연계해 주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연락을 하니 상황은 제 생각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알고 보니 이 친구가 자모회장님 지인의 친자녀가 아니고 전 부인의 자녀라는 것이었습니다. 새엄마였던 것이죠. 그러니 자모회장님의 지인도 이 친구를 받아줄 수 없었던 거였겠죠. 그날 저녁 본당 신부님과 통화 후 이 지인은 이 친구를 다시 아버지에게 가라고 했고, 당연히 이 친구는 아버지의 폭력이 두려워 집으로 안 가고 어디론가 갔겠죠.

저는 두고두고 이 일을 후회합니다. 큰 교훈으로 삼고 지냅니다. 가출을 생각하는 청소년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손을 내밀 때 지금 바로 잡아줘야 합니다. ‘신부님, 신부님도 사람인데 개인의 사생활도 있는 건데요. 세상 모든 사람을 어떻게 다 맡아서 하나요? 너무 스스로를 자책하지 마세요’라고 위로해 주실 분도 계실 겁니다. 그래도 마음에서 떠나지가 않습니다. 그 친구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아무도 자신이 내민 손을 잡아주지 않는 경험을 한 이 친구의 마음은 어떨까요. 이러한 작은 일들이 쌓여 어른에 대한 불신은 완성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날 저의 부족한 열성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성 요한 보스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 서울A지T(아지트) 은성제(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