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땅을 돌보면서 땅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다른 생명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처음 농사짓기를 하면서 정말 많은 기대를 하고 씨앗을 뿌렸고, 또 씨 뿌린 대로 열매가 나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고, 자녀를 대하듯이 애틋한 마음이 자랐다. 이 공동체가 완전히 자리 잡기 전에는 정말 많은 도전이 닥쳐왔는데, 그때마다 수녀회의 장상 수녀님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만약 수녀님이 너무 힘들면 이 공동체를 닫을 수 있어요.” 나와 공동체를 위해서 해주시시는 말씀이라 감사로우면서도, 자식처럼 눈에 밟히는 밭에 뿌려진 씨앗, 그 새싹들이 떠올라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떻게 씨앗을 뿌리고 떠날 수 있겠어요. 뿌린 씨는 거두고 싶습니다.” 사실 농부는 늦가을에도 봄을 향한 씨앗을 뿌리니, 나는 어떻게 보면 뿌린 씨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오늘까지 살게 되었나 보다 싶다.
그런데 이렇게 애지중지 씨앗을 뿌리고 돌본 농작물들을 넘보는 이웃들이 있다. 바로 나비 애벌레와 메뚜기, 참새와 비둘기, 고라니까지 정말 많은 이웃이 와서 시식이나 적당히 한 끼가 아니라 자기 밭처럼 들어와 먹고 있다. 첫해에 고구마밭에 찾아온 고라니네 가족은 300평 되는 고구마밭의 고구마 순을 거의 다 따먹고 갔다. 새벽에 고구마밭을 보고서 내 안에서 ‘아, 경찰서에 고발할 수도 없고, 누가 고라니들을 다 잡아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김장배추는 거의 일정하게 모든 배추의 2분의 1을 갉아 먹었는데, 마치 칼로 베어낸 것처럼 반포기를 먹어치웠다. 김장도 할 수 없는 반쪽짜리 배추를 손에 들고 나쁜 고라니 녀석들이라고 마음속으로 단정 짓고, 어떻게 하면 고라니를 쫓아낼지 궁리하였다.
동네 어르신들이 우리 밭의 상황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래 고라니들이 살았던 터전에 수녀님들이 들어온 거 잖어. 그러니까 텃세하는 거여. 그리고 수녀님들 농약도 안 뿌리니 얼마나 맛있겠어. 새들도 알고, 벌레들도 알아. 이제 더 많이 이 집으로 찾아올걸.” 약 올리는 듯한 말씀이었지만 듣고 보니 우리가 하려는 일이 바로 이런 일이 아니었나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어르신들은 당신네 밭에서 거둔 농작물들을 우리 집 앞에 가져다 놓으셨다. 배추 20포기 심어서 고라니에게 주고 150포기를 얻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르신들의 말씀이 옳았다. 우리가 다른 생명의 길목을 막았고, 자연 친구들의 서식지를 강탈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우리를 받아들여 주고, 우리를 위해 베풀어 주고 있는 더 많은 것들에 고마워하기보다 경계를 만들고, 사라져야 할 생명 혹은 해충으로만 생각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겨울철에 배곯을 고라니를 걱정하여 김장 때 모아둔 배추 겉잎과 상처 난 고구마를 산자락에 던져준다. 새벽에 기도하다 보면 고라니네 온 가족이 내려와 배춧잎을 먹는데 그 자체로 감동이다. 이제는 이 모든 생명과 함께 먹고 있다는 생각으로 농사하고 있다.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12일까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렸고, 2022년에는 5월 8일에서 22일까지 중국 쿤밍에서 ‘제15차 생물다양성 협약 당사국총회(COP15)’가 열리게 된다. 종교를 넘어선 지구 돌보기 운동이 되고 있는 가톨릭기후행동과 국제 ‘찬미받으소서 운동(Laudato Si’ Movement)’은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공동의 집’ 지구와 피조물 보호를 위한 과감한 행동을 결정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건강한 지구 건강한 사람들’ 청원 서명 운동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창조 때에 하느님께서 “잘 돌보아라”라고 주신 사명을 살기 위해 모든 이들이 지금 당장 땅을 돌보거나 먹이를 줄 수는 없어도, 이러한 서명에 참여함으로 지도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은 돌보는 사명을 받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지구에 사는 건강한 사람들의 올바른 선택이 간절히 필요하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영성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도직현장에서]가출 생각하는 이들에게 내일은 없어요 (0) | 2021.11.09 |
|---|---|
| 연약함 받아주시는 하느님의 자모적 사랑 체험 (0) | 2021.11.09 |
| [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 (95)자신과 타인 그 관계의 딜레마 (중) (0) | 2021.11.02 |
| [사도직현장에서]단 한 사람이라도 (0) | 2021.11.01 |
|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29) 여행지 : 성인(聖人) (0) | 2021.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