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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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 (95)자신과 타인 그 관계의 딜레마 (중)

참 빛 사랑 2021. 10. 29. 20:05



겉으로 보기에 실비아의 심리적 불안의 문제는 그 근저에 종교적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프로이드(Freud)는 바로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종교가 “신경증 환자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이유도 실비아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종교가 신경증 환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이 신경증 환자를 만들고 있다면 누가 인정할 수 있겠는가? 사실은 종교가 아니라 종교인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믿는 개인의 신념이 신경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실비아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는 말씀을 “이웃을 너 자신보다 우선적으로 혹은 너 자신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었다. 이것은 자신의 의식 차원에서 인식되고 있는 생각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왜 내 자신보다 이웃을 더 먼저 생각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나의 질문에, 실비아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는 “내 자신보다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할수록 예수님이 더 기쁘게 생각해 주시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말을 통해 실비아는 의식적이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 자신보다 타인에 대한 가치를 더 강조하신 분이라고 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비아의 이런 종교적 신념의 형식들은 그녀의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았다. 실비아는 선과 악은 명확하고 절대 그 중간은 없다는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세상에 온전한 선행은 있어도 적당한 선행은 없다고 믿었다. 관점에 따라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철학적 담론들은 모두 마귀가 인간을 꾀어내기 위한 시도일 뿐이었다. 자신을 우선적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는 심리학자들의 말은 이기적 본성을 합리화하는 말일 뿐이었다. 근본적인 이기심을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이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기 어려워 꾸며낸 자위적 말일 뿐인 것이다.

실비아는 아기 예수의 데레사를 자신의 영성적 모델로 삼았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가 평소 즐겨 묵상한 성경 구절, 즉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을 점점 죽이는 연습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자신을 죽이고 이웃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진실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실비아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전력을 다해 영적 실천을 수행했다. 추운 겨울밤 서울역 지하도 안에 노숙하는 분들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점퍼나 코트를 벗어주는 일은 그나마 쉬운 사랑의 실천이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거나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그 음식값과 영화비용을 저금해서 불우이웃 성금으로 내놓았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원하는 욕구가 일어나면 곧바로 이웃을 위한 봉헌으로 희생했다. 추운 겨울에도 불쌍한 사람을 생각하면 따뜻하게 입고 다닐 수 없었으며, 굶주린 사람을 생각하면 배부르거나 맛있게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실로 살아있는 성인의 삶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실비아에게 육체적 건강이 악화되고 심리적 불안이 심각해지는 현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아야 할 자신이 오히려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런 몸과 마음의 고통은 영성적 길을 걷기 위해 극복해야 할 자신에게 허락된 십자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사회생활은 물론이요. 선행도 실천하기 어렵게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실비아는 이 건강 문제만 해결되면 다시 선행의 영성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의사와 상담자를 만났다. 하지만 신체적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도 소용없었고 심리적 건강을 도와주는 상담사도 자신을 돌볼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희망인 사제에게 도움을 청하는 실비아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