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의 순례일기] (26)침묵의 제스처

로마에는 ‘트레 폰타네(Tre Fontane)’라고 하는 성지가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오로의 참수 터입니다. 성인께서 참수되면서 그분의 머리가 세 번 바닥에 튀었고, 그 장소마다 물이 흘러나왔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구원의 물 거리(Viale delle Acque Salvie)’라는 이름을 가진 길에 자리한 트레 폰타네는 시끄러운 로마 시내를 벗어나 조용하고 아늑한 가로숫길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습니다. 트레 폰타나의 입구에는 베네딕토 성인의 석상이 세워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오른손 검지를 입에 대고 있는 모습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침묵’하라는 의미로 해석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침묵의 제스처’라고 불리는 이 상징은 물론 외적으로 말을 삼가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만, 성경 안에서부터 드러나는 교회의 중요한 상징이기도 합니다.
“네가 이해했거든 이웃에게 대답하여라. 그러지 못했거든 손을 입에 얹어라.”(집회 5,12), “미련한 자도 잠잠하면 지혜로워 보이고 입술을 닫고 있으면 슬기로워 보인다.”(잠언 17,28), “내가 침묵하면 그들은 기다리고, 말을 하면 주의를 기울이며, 내가 길게 이야기하면 감탄하여 손을 입에 갖다 댈 것이다.”(지혜 8.12)
이러한 구절에서 보이듯, 손을 입에 대거나 침묵하는 모습은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과 의지에 감탄하고 주님을 신뢰하는 인간의 지혜로움을 표현하는 상징입니다. 우리 교회는 필요한 것 이외에 나머지는 침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해왔고, 그 때문에 베네딕토 성인, 프란치스코 성인, 도미니코 성인과 같은 교회의 발전에 특별히 기여한 수도원의 창시자들에게만 이 상징을 적용해 왔습니다.
제가 아주 사랑하고 존경하는 신부님과 순례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에서 시작해서 독일까지 이어지는 알프스 자락의 경치 좋은 장소들이 포함된 일정이었습니다. 그 일정의 마지막 부분에는 벨기에의 반뇌(Banneux Notre-Dame)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발현으로 유명해졌지만 본래는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순례단이 반뇌에서 머무는 동안 신부님께서는 특별한 요청을 하셨습니다. 한밤중에 순례단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 앞에서 침묵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시대에 침묵은 점차 낯선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침묵이란 외적으로 그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말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도 끊임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자고도 하셨습니다.
저녁을 일찍 먹고 조용한 성당에 모인 순례단은 어둠을 밝히는 작은 촛불 앞에 각자 자리를 잡았습니다. 미리 계획한 시간이었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지만, 처음 얼마 동안은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침묵보다는 동료들의 침묵에 더 신경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순례단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크게만 들리던 주위의 소리가 침묵에 녹아드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외적인 소음이 내적인 침묵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깨달음이었습니다. 따로 시간을 정하지 않았는데도, 많은 순례자는 그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몸이 조금 불편하셨던 순례자 한 분은 성당을 빠져나가 조용한 숲 속을 거닐다 다시 돌아오셨고, 이튿날 아침 식사 때에 “그 산책의 시간도 침묵을 멈추는 일이 아니라 침묵의 연속으로 느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순례자들은 하나같이 일정 중에 그 침묵의 시간이 가장 기쁜 일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침묵을 통해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압도당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연스럽게 경외를 표현하고 자신의 교만을 모두 내려놓아 겸손해지는 방법은 오직 ‘침묵’뿐이라는 것을 경험하신 듯했습니다. 때로는 순례를 통해 내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본디 신앙의 지향점이란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순례를 떠나지 못하는 이 시기에 그보다 중요한 지향점을 찾아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침묵’의 시간을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영성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느님 현존 의식은 곧 참 자아를 찾는 것과 같아 (0) | 2021.07.13 |
|---|---|
|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1. 없는 대로, 불편한 대로 (0) | 2021.07.13 |
| “하느님 현존 의식과 주님의 영을 간직하세요” (0) | 2021.06.30 |
|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25-끝> 내 눈의 들보 (0) | 2021.06.30 |
| [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79)좋은 습관의 비결이 있나요 (중) (0) | 2021.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