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보니 800년 전 그들이 보였다
[미카엘의 순례일기] (17)아시시의 카르첼리 은둔소

▲ 카르첼리에 있는 루피노 동굴.
순례를 여러 번 다녀오신 분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도시가 어디인지 가끔 여쭙고는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그리고 이탈리아의 아시시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아시시는 움브리아 지방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에 비견할 만큼 널리 알려진 도시는 전혀 아니지요. 그런데도 아시시가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 특유의 평화로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시시의 풍경은 이탈리아의 여느 아기자기한 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이 도시만의 평화로움은 방문객들에게 어딘지 특별한 느낌을 줍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무덤이 있는 대성당 앞 정원에 크게 쓰여진 ‘PAX’라는 단어가 말해주듯이요.
같은 장소를 수십 수백 번 순례하다 보면 어느 정도 타성에 젖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 듯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순례의 여정이 그런 저의 관성을 완전히 깨워주기도 합니다. 아시시로 떠난 어느 순례도 그러했습니다. 순례단은 이미 아시시를 여러 번 다녀오셨지만, 이번에는 더 천천히 여유롭게 둘러보기를 원하셨습니다. 4일간 그곳에서 머물기로 하고 도시 외곽의 편안한 숙소 대신 시내의 작고 낡은 숙소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4일 내내 걸어 다니며 아시시를 구석구석 순례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되자 뜻밖에도 익숙했던 이 도시는 제게 또다른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조그마한 도시의 크기에 비해 아시시에는 순례할 장소가 아주 많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가장 사랑했던 작은 경당(포르치운쿨라, Porziuncula)과 장미 정원으로 둘러싸인 ‘천사들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성인께서 태어나고 자란 ‘생가 성당’, 다미아노 십자가와 클라라 성녀의 무덤이 있는 ‘클라라 대성당’, 그리고 한때 사형장으로 쓰여 ‘지옥의 언덕’이라 불렸지만 성인의 시신을 모신 이후에는 ‘천국의 언덕’으로 불리게 된 언덕과 그 위에 세워진 ‘프란치스코 대성당’까지…. 늘 촉박한 일정에 등 떠밀렸던 저 또한 편안한 마음으로 도시를 걸어 다녔습니다.
그리고 셋째 날에는 카르첼리 은둔소(Eremo delle Carceri)를 순례하기로 했습니다. 젊은 프란치스코가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던 시기에 자주 찾았고 이후에도 형제들과 함께 사순절을 보내거나 기도했던 장소입니다. 도시 위쪽의 수바시오 산자락 위에 위치한 이곳에는 작은 수도원이 있으며 프란치스코와 동료들이 머물던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해발 약 800m의 고지였지만, 우리는 찻길을 놔두고 직접 걸어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한발 한발 딛고 위로 올라갈수록 낯설고 강인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알았던 평화로움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성인께서 머무시던 동굴은 안에는 돌로 된 침대와 경당이 있고, 출구에는 성인을 괴롭히던 악마가 도망갔다는 ‘악마의 구멍(Buco del diavolo)’이 있습니다. 또 동굴을 벗어나 외길로 이어진 숲 속 산허리 길을 걷다 보면 성인과 함께했던 동료 형제들이 기도하고 머물던 동굴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어느 산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바위틈에서 살았습니다. 전날 들고 온 빵 조각으로 하루의 식사를 대신하고, 자신이 앉은 바위를 기도처로, 침대로 삼으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 말고는 그 어떤 것도 고요를 깨지 않았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순례지를 열심히 사진에 담던 저는, 어느 순간 셔터 누르기를 멈추었습니다. 사진기를 내려놓고 그저 나무와 바위뿐인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800년 전 그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문득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사막의 교부 중 한 분이 쓰신 책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수도자는 시끄러운 것을 피해 사막이나 광야의 고요함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한적한 곳에 있는 수도원은 홀로 악마와 악을 대적하기 위해 선택된 전쟁터입니다. 그곳은 세상의 소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끄러울뿐더러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보다도 훨씬 더 처절한 장소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들과 싸우기 위해 이곳으로 올라왔습니다. 그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가 바로 이 고요한 평화였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외롭고 질긴 싸움을 이겨낸 신앙인들의 흔적이 평화라는 이름으로 남아 8세기의 세월을 견뎠다는 것을 저는 그 날에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발밑에 펼쳐진 아시시의 모습이 어쩐지 달라 보였습니다. 순례자들이 아시시를 잊지 못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습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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