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의 순례일기] (5)수녀님의 웃음

▲ 태국 파티야의 푸른 바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지적 장애인 공동체.
대학 시절 큰 부상을 당해 같은 부위를 3번 수술하고 1년가량 목발을 짚으며 다녔던 저는, 친구들로부터 ‘애자’라고 불렸습니다. ‘장애인’의 잘못된 표현인 ‘장애자’의 줄임말이지요. 여전히 불편한 다리로 인솔자라는 직업을 택한 사람으로서, 사실 저는 거동이 불편한 분들의 순례길에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조금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성지순례란 결국 걷는 여행입니다. 종일 걷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맞춰 미사를 봉헌하고,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매우 힘듭니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더군다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떤 인솔자든 마찬가지겠지만, 순례단에 몸이 불편하신 분이 계시면 무거운 캐리어를 끌거나 호텔 조식 뷔페에서 쟁반에 음식을 담는 사소한 일들까지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인을 통해 지적 장애인 공동체를 담당하고 계신 수녀님을 소개받았을 때, 조금은 망설여졌던 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언덕을 올라 대문을 열고 들어간 작은 마당에는 새하얀 성모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밝고 선한 얼굴의 자그마한 수녀님께서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먼저 우리 아이들과 인사하시겠어요?”
실제로는 모두 성인이지만, 수녀님은 항상 말버릇처럼 아이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수녀님의 뒤를 따라 복도를 지나 미닫이문을 열자, 왁자지껄하던 실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낯선 손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우리 여행을 함께하실 미카엘씨야, 인사드려.”
그러자 아이들의 표정이 달라지더니, 삼촌, 형, 오빠하고 친근한 호칭들이 튀어나왔습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대한항공을 검색하고 있다는 아이도 있었고, 코끼리를 꼭 타볼 것이라고 말해주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제 주위에 모여들어 손을 잡고 얼굴을 쓰다듬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들을 보니, 아이들이 이번 여행을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는지 단박에 느껴졌습니다. 이곳에 오는 것을 망설였던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이렇듯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고 있어요. 그래도 예수님 손 잘 잡고 열심히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데, 힘이 많이 들어서 두 다리 구르며 울고 싶을 때가 많아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예수님의 매력을 포기할 수가 없네요.”
수녀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대화 도중 수녀님과 저는 나이가 같은 것을 알고, 서로의 친구가 되기로 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정말 아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에요. 비용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매우 컸지만, 장상 수녀님과 후원자들의 마음과 정성으로 어렵게 마나 계획할 수 있었답니다. 제가 먼 훗날 수도복 입고 흙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하는 영적 친구가 되어주시길 바라요. 저와 친구 된 기념으로 잘 준비해주세요. 다 맡길게요.”
오랜 경험상,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고객으로서 가장 까다롭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저는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진심으로 대답했습니다. 한정된 비용으로 수녀님과 아이들의 희망 사항을 반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고, 5일의 짧은 태국 일정이었지만 십수 일의 유럽 일정보다 훨씬 꼼꼼하게 신경 썼습니다.
순례를 하다 보면, 이것이 성지순례인지 단순한 여행인지 저 자신에게 가끔 묻게 되고는 합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런 구분이 의미가 없었습니다. 아이들과의 일정은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정이었지만, 한순간도 힘들거나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추억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평화방송 사장신부님과 TV국의 전폭적인 협조로, 아이들의 일정이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파타야의 푸른 산호섬에서 바다 수영을 즐기다 스콜(일반적으로 많은 비와 뇌우를 동반한 강한 바람으로 열대지방에 자주 일어남)을 만났습니다. 저는 화들짝 놀랐지만, 아이들은 천둥번개도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웃으며 바닷가를 겁 없이 휘젓고 다녔습니다. 아이들의 장난에 수녀님이 입은 수도복도 바닷물에 푹 젖고 말았습니다. 수녀님의 얼굴에 아이들과 꼭 같은 웃음이 가득 떠올랐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저만의 편견을 한 움큼 바다에 떠내려 보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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