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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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43) 신비체험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

참 빛 사랑 2020. 10. 13. 21:22


인간은 누구나 신비스럽고 초자연적이며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근원적으로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과학자이며 신학자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우리는 영성적 경험을 하는 인간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 경험을 하는 영적 존재”라고 했다. 이때 인간의 영성적 경험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종교적 형상을 통해 표현되지만(예, 하느님 체험, 성령 체험),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성스러운 체험 혹은 신비 체험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경험하고 있는 모든 영성적 혹은 초월적 체험들은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의 계시나 현시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메일을 보낸 카타리나 자매의 궁금증, 즉 본당 사제가 왜 자신의 체험을 타인에게 누설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리셨는지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 신비 체험은 자기 자신에게 의미를 주는 체험으로 그쳐야 한다. 만일 이 체험을 공유하고 싶다면 그 내용을 순수히 자신의 개인적 체험으로만 한정하고 그 사실을 객관화하거나 일반화하여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

가톨릭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느님의 모든 계시 내용은 이미 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 따라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하느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성경 말씀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사적인 영적 체험은 자신 안에서 성경 말씀이 인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만을 지닌다. 개인의 신비 체험 의미가 자신에게만 한정되어야지 타인에게로 확장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이 말이 개인을 통해 신적인 메시지가 공적으로 전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서는 신앙인들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 때로는 사적 계시를 믿을 수 있는 메시지로 특별히 인정해 주기도 한다. 파티마나 루르드의 성모님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메시지를 공적인 메시지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이 메시지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는 그 사람을 교회의 가르침을 벗어난 사람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가 공인한 사적 계시는 “믿어도 좋고, 믿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지 “반드시 믿어야 하는 가르침(믿을 교리)”은 아니다. 따라서 교회의 엄격한 인준 과정을 거치지 않은 주변의 수많은 사적 계시들은 그 내용의 진위와 상관없이 순수히 개인적 의미로만 한정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게 된다. 첫째, 바오로 형제가 경험한 신비 체험들은 신을 믿는 사람은 물론이요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초월적 체험이며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믿어야 할지 혹은 믿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신앙적 질문은 의미가 없다. 둘째, 안나 자매와 같이 개인적인 신비체험이 개인적 의미를 넘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으며, 대부분 정신적 문제(환상이나 망상, 혹은 변상증-pareidolia)의 결과이거나 혹은 심리적 문제(타인을 조정하거나 통제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에 의한 경우를 의심해야 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신비체험에 대한 분별의 은사를 얻고 싶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면서 그 체험이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력, 즉 그 열매를 보고 판단을 할 수 있다. 즉, 개인의 현실생활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신비체험은 하느님 혹은 성령체험으로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