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선종… 교구민들 ‘착한 목자’ 떠남에 슬퍼하며 추모
인천교구 제2대 교구장 최기산(보니파시오) 주교가 5월 30일 오전 11시 40분 지병으로 선종했다. 향년 68세.
최 주교의 장례 미사는 2일 인천 답동주교좌성당에서 한국 교회 주교단과 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거행됐고, 유해는 인천교구 하늘의 문 묘원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최 주교는 평소 심장 질환이 있었지만 선종 전날에 부천 심곡부활성당을 사목방문하고 견진성사까지 집전한 터여서 교구민들은 급작스러운 교구장 선종 소식에 충격과 함께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늘 웃음이 넘치고 자애가 가득해 신자들의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최 주교는 2002년 제2대 인천교구장 주교로 착좌한 이후 만 14년 동안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구민을 위한 착한 목자의 삶을 살고자 한결같이 노력해 왔다. 최 주교가 교구장에 취임하던 2002년 85개였던 본당이 122개(2015년 말 현재)로 43.5% 늘어나고, 신자 수도 37만 2213명에서 49만 6364명으로 33.4% 늘어나는 등 최 주교 재임 기간 인천교구는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
최 주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데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환경 운동에도 큰 관심을 가져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시절에는 가톨릭 환경상을 제정하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태계를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2014년에는 관동대를 인수해 가톨릭관동대로 새롭게 출범시키는 한편 가톨릭관동대 의대 부속 국제성모병원을 세우고 복합메디컬타운을 조성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1948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난 최 주교는 1975년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은 뒤 부평1동본당 보좌로 사목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김포ㆍ해안ㆍ산곡3동본당 주임과 미국 교포사목, 교구 복음화사목국장, 인천가톨릭대 교수 등을 역임한 뒤 1999년 10월 인천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됐다.
2002년 4월 초대 교구장 나길모 주교에 이어 제2대 인천교구장으로 착좌한 최기산 주교는 2002∼2007년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을 지냈다. 최 주교는 2004∼2010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을 역임했으며, 2010년부터 주교회의 성직주교위원회 위원장을, 2014년부터 주교회의 서기를 맡아왔다.
교구 신자들은 최 주교 선종 소식이 알려지자 빈소가 마련된 답동주교좌성당을 찾아 연도를 바치며 고인의 안식을 기원했다.
정신철(인천교구 총대리) 주교는 5월 30일 답동주교좌성당에서 봉헌한 위령미사 강론을 통해 “평소 그렇게 좋아하던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신 주교님은 다시는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으실 것”이라며 “주교님이 떠나고 나니 그 자리가 더 크게 보이고 그동안 함께 했던 모든 일이 기억난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정 주교는 “최 주교님이 우리에게 남겨 주신 말씀과 행적을 기억하면서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굳은 신앙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자”고 추모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애도 메시지에서 “최 주교님은 사목 활동에 열정을 다하고, 소탈한 성품으로 신자들에게 지극한 사랑을 전하던 ‘착한 목자’이셨다”며 주님께서 최 주교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받아주시기를 청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주님을 따라 산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가 5월 30일 하느님 품에 안겼다. ‘나도 저런 사제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일으킬 만큼 성덕이 뛰어난 주교였기에 목자를 보내는 슬픔은 더 컸다. 교구 설정 55주년을 보내며 두 번째 목자를 잃은 교구 공동체는 최 주교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사목자로서 살아온 41년 생애에 녹아있는 복음화의 열정과 교구 공동체를 향한 사랑, 그 신앙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말수는 적지만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겸손의 덕을 갖춘 착한 목자’.
5월 30일 선종한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에 대한 주위의 평가는 한결같다. ‘인화’를 중시하는 사목 스타일과 소탈한 성품, 뛰어난 성덕으로 후배 사제들의 한결같은 본보기가 됐다.
침묵의 영성 갖춘 설교가
“뒷담화만 안 해도 성인”이라는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침묵의 영성을 갖췄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설교에 큰 관심을 가졌다. 본당 신부로, 신학교 교수로 바쁜 와중에 1995년부터 3년간 미국 세인트루이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교 설교연구소에서 연수를 받고 ‘보다 나은 주일 설교를 위한 제언’ 등 여러 편의 논문과 「말 잘하는 신부의 이야기 교리」 등 강론집과 복음 예화집을 집필했다. 어린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어린이 설교집을 낸 것도 최 주교가 처음이었다. 1999년 주교 수품 이후에도 「어느 주교의 행복수첩」 「행복을 부르는 말씀」 등 성경 묵상집을 여러 권 내 신자들의 복음살이를 도왔다.
이처럼 겸손하고 신심이 깊은 목자이어선지 최 주교가 교구장으로 재임한 14년 동안 인천교구의 교세는 크게 늘었다. 교구장에 취임한 2002년 말 본당은 85개 본당에서 2015년 말 현재 122개로, 43.5% 증가했고, 신자 수도 37만 2213명에서 49만 6364명으로 33.4%나 늘어났다.
최 주교는 그러나 교구의 외적 성장에만 치중하지 않았다. 소외된 청소년과 노인, 여성 등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을 확충하고, 사회 사목에도 눈길을 돌렸다. 이를 위해 교구 신학생들에게 사회복지 자격증을 따도록 했을 정도였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마리스텔라 실버타운을 조성했고, 2014년 당시 60년 전통의 관동대를 인수, 가톨릭관동대를 출범시켰다. 이와 동시에 국제성모병원을 설립해 가톨릭관동대 의대 부속병원으로 삼고 복합메디컬타운을 조성, 병원 사목의 새로운 전기로 삼았다.
최 주교는 환경 사목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1996년 인천가톨릭대 교수 신부 시절에는 강화도 옆 석모도에 지으려던 1200만㎾ 규모 LNG발전소 건립을 무산시키는 데 이바지했고, 지역 환경 단체들과 「강화도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관한 연구」 자료를 내기도 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재임 시기에는 위원장이 되자마자 환경소위원회를 중심으로 가톨릭 환경상을 제정,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과 자연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이에 앞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 간 대화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이웃 종교와의 대화에 힘쓴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구교우 집안서 성소 키워
최 주교는 구교우 집안 출신이다. 1948년 경기 김포시 양촌면 마산리 278번지에서 최윤봉(파비아노)ㆍ정용환(데레사)씨 사이 6남 2녀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나 엄격한 신앙의 훈육을 받으며 자랐다. 김포성당이 집에서 10㎞가량 떨어져 있었지만, 늘 미사에 참석했다. 사제가 되겠다는 성소를 갖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로 평소 최 주교를 모범적 신앙생활로 이끌었던 부모 영향이 컸다.
신학교 시절, 최 주교는 평범하고 조용한 신학생이었다. 특기할 만한 게 있다면, 한국 천주교회에 미국의 성령쇄신운동을 소개했던 백 제랄드(Gerald Farrell) 신부를 신학교에 초청해 강의를 마련하며 성령쇄신기도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래선지 1981년부터 9년간 교구의 성령쇄신봉사회 담당 신부를 맡아 교구 신자들 사이에 성령쇄신의 열기를 불러일으키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도 본당 사목자로, 교구 사목국장으로, 신학교 교수로 복음화에 열성적인 면모를 보였고, 새천년기 교구 복음화의 문을 열고 하나하나 초석을 다져나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최기산 주교 약력
1948년 5월 16일 경기 김포 출생
1975년 12월 6일 사제 수품
1975~1977년 부평1동·백령 본당 보좌
1977~1987년 김포·해안·심곡1동 본당 주임
1987~1990년 교구 사목국장
1990~1994년 해외 교포 사목
1994년 5월 미국 성 요셉대학교 종교학 석사
1995~1996년 인천교구 산곡3동 본당 주임
1996~1999년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영성처장, 겨레문화연구소장 겸임)
1999년 10월 29일 인천교구 부교구장 임명
1999년 12월 27일 주교 수품
2000년 3월~2004년 10월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위원장
2001년 1월~2002년 4월 인천교구 총대리
2002년 4월 25일 인천교구장 착좌식
2002~2007년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
2004년 10월~2010년 3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2010년 3월~2016년 3월 주교회의 교육위원회 위원장
2010년 3월~ 주교회의 성직주교위원회 위원장
2014년 10월~ 주교회의 서기
2014년 10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상임이사
2016년 5월 30일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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