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코의 청빈과 박 대표의 욕망
박 대표와 연락이 닿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차의 수입·유통은 물론 티클래스, 티소믈리에, 창업 등 다양한 교육 사업에도 매진하느라 요즘 정신이 없다. “스스로 차계의 백종원이 되겠다고 합니다.(웃음)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고요.”
그런데 프란치스코 성인 하면 바로 떠오르는 단어는 ‘청빈(淸貧)’이 아니던가. 수시로 잔에 채워주는 백차를 마시며 들은 그의 20대를 봐도 세속적인 욕망이 있는 데다 이렇게 사업까지 하는데 종신 서약한 ‘프란치스칸’이라니, 내심 이것도 하나의 겉치레인가 싶다. “솔직히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입회했죠. 제대로 활동도 못 했고요. ‘다 버리고 내주라’는데, 어느 정도여야 따라가죠. 그런데 자꾸 성소가 생각나서 3년 만인 2016년에 다시 받아달라고 부탁했어요.”
5년 정도 교육을 받으며 그제야 프란치스코회가 말하는 ‘가난’을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프란치스코회는 하강, 육화된 예수님, 우리 곁에 오셔서 작아진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겨요. 즉 ‘영적 가난’으로 얘기할 수 있는 거죠. 물질적인 가난을 추구한다면 사업하는 사람은 프란치스칸이 될 수 없어요. 또 수도회의 입장은 ‘기도하러 오지 마라. 천국 가려고 오지 마라’예요. 대신 ‘머무르지 말고 나가서 성인처럼 활동하라. 너의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감흥을 느껴 하느님의 복음을 알게 하라’고 해요. 그래서 이제는 명확해졌어요. ‘정직하게 돈을 벌자. 거기에 복음 말씀을 담고 번 돈은 나누자. 조직 안팎에서 역할을 하고 가정생활에 충실하자.’”
신앙심은 낮지만 노력하는 프란치스칸
여러 번 찻잔을 비우다 보니 박 대표는 좀 더 편안하게 속내를 꺼냈다. 가톨릭평화신문 인터뷰가 있다는 말에 가족들의 놀림도 받았단다. ‘네가 그럴 자격이 되느냐’고. “저도 자격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신앙심도 부족하고…. 그런데 우리는 일요일에만 신자가 되잖아요. 평일에는 일상인이 되고. 그걸 극복한 것 같아요. 신앙이 일상과 합쳐지고 신앙적인 관점에서 행동하고 일도 하는 거죠.”
호전다실에서 진행하는 ‘무료 시음’도 그 일환이다. 재속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면서부터 이곳을 찾는 모든 이에게 돈을 받지 않고 차 한 잔을 제공한다. “찻자리는 모두에게 평등해요. 누구나, 누가 와도 똑같이 차 한 잔을 대접하죠. 그리고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운치 있는 한옥 찻집이 아니다. 차를 마실 수는 있지만, 그 찻잔에 돈이 오가지는 않는다. “힘든 상황도 많았고, 굶어 죽는다고 테이블을 놓고 찻집으로 운영하라는 제안도 많이 받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지금 여유가 생긴 건 아니지만, 원하는 대로는 가고 있어요. 점점 대중성을 갖게 되고, 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게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해요.”
60~70대가 주 소비층이던 차 업계는 몇 년 사이 연령이 많이 낮아졌다. 무료 시음은 물론 다양한 방식으로 차를 찾는 MZ세대에게 박 대표는 차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제게 주어진 달란트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해요. 회개하고 신앙 회복하면서 정말 좋았기 때문에 일을 통해 가톨릭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다치 않는 이유도 이렇게 얘기하고 나면 약속이 되고 더 열심히 살게 되잖아요.”
향이 좋은 청차까지
박 대표가 마지막으로 건넨 차는 비 오는 날 향이 더 돋보인다는 청차였다. 커피나 와인은 열매로 만들지만 차는 이파리로 만들어서 좀 밍밍하단다. 하지만 그 단점 때문에 아이들을 비롯해 온 가족이 함께 마실 수 있다. 또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다도(茶道)는 수도(修道)와도 닮은 모습이다. “불교에서 수행 방식으로 ‘좌선(坐禪)’을 얘기하잖아요.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다선(茶禪)’이라고 하죠. 또 함께 차를 마시다 보면 깊이 있는 대화를 하게 되는데, 이렇게 친해지면 ‘다우(茶友)’라고 해요. 다우가 되면 가족만큼 친하죠.”
그는 지난 10년 동안 호전다실을 다녀간 수많은 낯선 이와 차 한 잔을 나누며 그들과 값진 시간과 마음도 나누었다. 문득 이것 또한 프란치스코 성인이 말한 진정한 ‘나눔’이 아닐까. “앞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제 세례명을 더 드러내며 살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이것도 신앙적인 과시욕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명이라도 신앙을 회복하면 좋은 거 아닐까요. 저야 그분처럼 다 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 끄트머리라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