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스페인 순례에서 만났던 운전기사님은 제가 기억하는 최고의 동반자 중 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헤어지는 날까지 내내 친절하고 상냥하셨습니다. 몸이 불편한 자매님이 보이면 달려가 부축하셨습니다. 저에게 한국어 인사를 몇 마디 배우시고는, 매일 “좋은 아침입니다”라며 손을 흔들어 주셨고, 식당에 도착하면 “맛있게 드세요”라며 웃으셨습니다. 버스에서 묵주기도를 할 때면 성호를 긋고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 순례단 안에서 점차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모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순례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도로 위에서 갑자기 교통경찰이 버스를 세웠습니다. 사실 유럽에서는 이렇게 운전자의 신분과 자격, 버스의 운행 기록을 불시에 검사합니다. 도로 위에 경찰이나 속도위반 카메라가 거의 없는 대신 이런 방식으로 교통 법규를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경찰관이 기사님의 신분증과 자격증을 확인하고 전용 단말기에 카드를 삽입하자, 단말기에서 운행 기록이 출력되었습니다. 운전을 시작한 시각과 끝낸 시각, 총 운행 시간과 중간 휴식 시간, 과속한 기록까지 날짜별로 정리된 내역이었습니다. 몇 가지 법규 위반 항목도 함께였지요. 교통 체증 때문에 법으로 정해진 일일 운행 시간을 넘어선 날도 있었고,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과속을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사정을 설명하는 기사님의 모습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교통 위반 벌금은 상당히 엄격해서, 결국 1100유로가 넘는 벌금 딱지에 사인하셔야만 했습니다.
유럽의 버스 기사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주 적습니다. 일이 많은 계절에는 휴일이 고작 한 달에 하루 이틀 정도입니다. 보수도 많지 않은데 가족과 함께할 시간도 모자라다 보니 이혼율이 아주 높은 직종이기도 하지요. 기사님은 다음 날 우리의 목적지인 파티마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셨는데, 보름 만에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며 잔뜩 기대하고 계시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돈으로 150만 원에 달하는 벌금을 받았으니 얼마나 마음이 무거우셨을까요?
다음 날 파티마 호텔에 도착한 뒤, 기사님은 가이드의 통역을 빌려 마지막 인사를 하셨습니다. 다음 날부터는 새로운 기사님이 오시기로 예정되어 있었거든요. 기사님께서는 “한국의 많은 여행 팀과 일을 해보았지만, 순례단과 함께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전의 여행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똑같은 형제자매로 대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고 하셨습니다. 전날의 불시 검문 때문에 40분이 넘도록 지체되었던 점도 양해를 구하셨지요. 마지막으로 기사님께서 고개 숙여 인사 하시는데, 순례단의 총무 역할을 하셨던 자매님께서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으셨어요.
“저희 순례를 위해 하느님께서 특별히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게 해주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기쁘게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봉투 안에는 어제의 벌금을 낼 수 있을 만큼의 돈이 들어있어요. 제각기 성물을 사려고 준비한 돈, 자녀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아껴둔 돈을 선뜻 내어주신 것이에요. 아마도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만, 기사님 덕분에 이번 순례를 훨씬 더 아름답게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저희와 함께 기도하실 때마다 기사님 또한 순례단의 일원이라고 느꼈답니다. 형제자매의 어려움을 나누는 건 당연한 일이니, 정성을 받아주세요.”
자매님께서는 예쁜 봉투를 꺼내 드셨고, 가이드를 통해 이야기를 들은 기사님은 깜짝 놀라며 눈가가 촉촉해지셨습니다. 순례단 모두는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자매님은 기사님께 봉투를 전달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버스 앞에 누군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기사님의 아내분이셨습니다. 보름 만에 집에 돌아온 남편을 마중하러 나오신 것이었지요. 버스가 도착하고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도 내리지 않다가 갑자기 큰 박수 소리가 나자, 무슨 일인가 싶어 버스 안을 들여다보신 것입니다. 기사님이 아내의 손을 잡고 상황을 설명하시자, 아내분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고맙다고 인사하셨고, 버스에는 더 큰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고작 일주일가량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순례단과 기사님이 함께 나눈 그때의 마음은 오직 ‘순례’의 길 위였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아도 기도를 통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믿는 진짜 기적의 모습이 아닐까요?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