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의 순례일기] (46) 중국 가톨릭 신자들

몇 년 전 중국의 사제와 수녀님께서 한국 성지 순례를 문의하셨습니다. 회사 사정상 제가 그분들을 안내하도록 배정되었는데, 여러 차례 연변과 북경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순례를 떠나 중국 교포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그곳에 남아있는 초기 한국 교회에 대한 흔적과 현 상황에 대해서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교포가 아니라 중국인 신부님, 수녀님과 함께 한국 성지를 다니며 인솔하고 가이드까지 해야 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 일을 맡고 나니, 중국 순례단과 관련된 특별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중국 정부의 개방적인 정책으로 인해 이스라엘이나 이탈리아에서 중국 성지 순례단을 만나는 경우는 종종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한 호텔에서 각국의 순례단이 분주하게 버스를 기다리던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일찍 내려와 일정을 다시 체크하기 위해 호텔 계단 구석의 한적한 곳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중국인이 계단에 앉아 무엇인가를 읽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순례 일정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중국 순례단은 워낙 대규모인 데다, 특유의 성조 탓인지 서로 대화를 나눌 때면 크게 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아, 가능하다면 일정이 겹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저는 슬쩍 일정표를 들여다보려는 마음으로 조용히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제 섣부른 생각이 부끄럽게도, 그분들이 읽고 계신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이었습니다. 한자가 세로로 빽빽하게 쓰인 낡디낡은 성경에는 이미 여러 색깔의 밑줄이 가득했는데도 그분들은 노란색 형광펜으로 그 위에 다시 한 번 줄을 긋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그날 순례하게 될 장소에 관한 구절이었겠지요.
저는 모방 신부님께서 활동하시던 서만자 성당을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성당에서부터 마을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논과 밭에서 일하던 분들이 삼삼오오 성당으로 모여들어, 100여 명의 신자 모두가 무릎틀에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시작하는 그 잊지 못할 모습을 말입니다. 공산당의 독재와 문화혁명을 겪으면서도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신앙을 지켜온 그분들과, 예루살렘의 이렇게 소란스러운 호텔 한 켠에서 성경을 읽고 또 읽는 그분들의 마음이 과연 어떠셨을지 저는 차마 짐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순례길에는 한국으로 유학을 온 중국 신학생 한 분과 한국 수녀원에 파견되어 일하고 계신 중국 수녀님 한 분이 통역을 위해 동행하였습니다. 4일의 짧은 일정이라 수도권 주변에만 머물렀습니다. 첫날은 주로 조선 교회 초기에 중국 교회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사목하신 첫 번째 사제가 바로 소주 출신의 북경 신학교 1회 졸업생이신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이시며, 그분의 활동과 순교가 얼마나 중요한 계기였는지 말씀드리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신부님을 처형했던 포졸은 죽은 이가 정말로 부활하여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신을 조각내서 한강에 던져버렸으므로 유해를 찾을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지요. 그분들은 제 이야기에 매우 놀라셨습니다. 문화혁명을 거치며 중국 교회에 관한 모든 문헌이 불태워진 탓에 초기 교회의 역사에 대한 자료는 하나도 남지 않아, 그런 비슷한 이야기조차 들으신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성직자나 수도자와는 다른 모습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특히 수녀님께서는 버스에 타기만 하면 쓰고 계셨던 베일(머릿수건)을 벗어버리셨습니다. 제가 놀라서 여쭈어보니, 지금은 한국 순례 중이고 성당을 방문하니 계속 베일을 쓰고 있지만 중국에서 활동하실 때에는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본당에서 활동하시는 수녀님을 제외하면, 바깥에서 베일이나 수도복을 입고 활동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라고요. 중국은 대외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신앙을 갖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저는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들께서는 한국에서 신자들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얼마나 부러워하셨는지 모릅니다.
이렇듯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자신의 신앙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자유를 갈구하는 이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의 북녘 동포 중에도 분명 존재할 테지요. 그러나 그분들 역시 하느님께 불림 받은 사람이며 그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이므로,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는 달리 결연하고 깊은 신앙의 모습을 간직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러 세상에 오실 그분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입니다. 자유를 빼앗겨 차갑고 시리기만 한 땅에서도 신앙을 굳건히 지켜가는 분들을 기억하며, 다가오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세상 모든 이들이 마음껏 축하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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