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이임 인터뷰

제13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11일 명동 교구청 교구장 집무실에서 교계 언론사와 마지막 이임 인터뷰를 했다. 그는 큰 어려움 없이 교구장 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었고, 내 게으름과 부족함으로 하느님의 눈길이 가 있는 곳에 따라가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털어놨다. 염 추기경은 “모든 것을 완성하시는 주님을 맞아들이는 것은 우리 인생의 갈 길”이며,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를 살지 않으면 평화는 이뤄지지 않는다”고도 당부했다.
- 9년 5개월 동안 맡아온 서울대교구장 직무를 이제 내려놓으셨습니다. 개인적인 감회와 소감이 궁금합니다.
홀가분하고 상쾌합니다. 가을이 돼서 그런가(웃음). 제가 서울대교구장으로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무엇보다 저에게는 주변에 많은 협조자가 계셨습니다. 선후배 신부님들, 수도자, 신자들의 기도와 지지가 큰 힘이 됐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내 게으름, 부족함 때문일 수도 있고, 하느님 눈길이 있는 곳에 가 있지 못하고, 예수님이 활동하고 계신 곳에 따라가지 못하고, 놓치고 그런 것이 정말 아쉽고 부족했습니다.
- 교구장을 지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최근 정진석 추기경님의 장례를 주관한 것입니다. 제가 교구장을 하면서 비로소 정 추기경님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정 추기경님이 돌아가시니까 의지할 데가 없고, 물론 하느님께 의지해야 하지만…. 그리고 여러 사람의 기도와 협조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건립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 결실이 아니라 순교자들 전구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순교자들의 헌신적인 사랑,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삶이 우리나라에 소중한 유산이 됐습니다. 국가 땅이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는데, 신자 아닌 분들이 많이 참여해 협력해주셨습니다.
- 올해부터 낙태죄가 효력을 잃었습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생명 수호와 생명문화 건설을 위해 앞장서 오셨지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생명이 있기에 존재하지요. 하느님이 주신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존엄한지, 우리가 깊이 받아들이고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경제 개발을 할 때 가난의 고리를 끊기 위해 ‘둘만 낳아서 잘 키우자’고 했죠. 그렇게 가족계획을 세우는 것이 우리가 잘사는 길이다 한 거죠. 그러면서 소중한 게 무엇인지 길을 잃어버리게 됐어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 이렇게 됐고, 우리가 성공한 거 같고 잘 사는 거 같으니까…. 그런데 결론은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더 많아졌지요. 자녀가 소중하다고는 하는데 양육비, 교육비, 주택 마련 문제 때문에 자기 희생을 두려워하는 거죠. 하느님이 주신 생명은 선물인데, 이것에 대해 이제는 관대하게 받아들이지를 않아요. 선물이라고 하면서도 제한을 두는 것이죠. 인간 생명이 무엇보다 존엄하고 숭고한 이유는 인간이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의 생명은 초자연적인 소명을 지닌 숭고함,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도 없는 가치를 지닙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인간 생명을 책임감을 가지고 보존해야 하며,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생명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생명의 연대성으로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교구장님이 추기경에 서임되셨던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교황 방한 이후 한국 교회는 어떤 변화를 맞았고, 그에 따른 한국 교회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당신이 결정해서 사목 방문을 하신 것은 한국이 처음이었습니다. 지역 청년대회에는 교황님이 참석을 안 하시는데, 아시아 청년대회에 오셨고요. 124위 시복식을 지역 교회 현지에 오셔서 하신 것도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교황님께서 ‘남북평화’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힘을 실어주셨죠. 교황께서는 방한 당시 ‘서울대교구가 세상의 누룩이 되길 바란다’는 글귀를 남기셨습니다. 교황님의 이 말씀으로 우리는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덕분에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그 은총의 빚을 갚아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항상 우리 자신을 뛰어넘어 이웃, 특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교회를 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로 북녘 교회와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사목적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교구민들이 어떤 지향과 실천으로 평화를 이뤄나가길 바라시는지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평화는 단순히 전쟁과 폭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 최대한 존중받고 시민 생활의 공동선이 보장되며 하느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삶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평화는 인간의 노력과 실천을 필요로 하지만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대로 ‘끝없는 용서와 조건 없는 나눔을 지닌 자비의 마음’입니다. 이 모든 것의 구체적인 실천은 기도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기도로써 청해야만 확실히 얻을 수 있는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를 살지 않으면 평화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 세계주교시노드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서울대교구는 10월 17일 개막 미사를 봉헌하고 본격적으로 교구 단계 시노드에 착수했는데요.
서울대교구는 2000년에 3년 동안 시노드를 했습니다. (시노드를 할 때가 되었는데) 마침 교황님께서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온 세계의 평신도들이 목자들과 함께 대화하고, 경청하고 들어주면서 성령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을 따라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 말씀을 듣고,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지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교구 단계 시노드에 마음과 힘과 정신을 다해 참여하길 바랍니다. 평신도들은 모두 시노드 교회 안에서 공동 책임감을 지니고 시노드에 참여하여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참된 징표가 되는 시노드 교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성직자들은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 식별하고 양 떼들이 함께 성령의 뜻으로 나아가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 퇴임 후에 하고 싶으신 일은 무엇인지요.
지난번 헝가리에서 열린 제52차 세계성체대회에서 하느님께 은총을 받았습니다. 성체대회 주제가 “나의 모든 샘이 네 안에 있네”(시편 87,7)였는데, 내 안의 샘이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하느님 안에 있다는 것이죠. 구체적으로는 사람이 되셔서 인간에게 가까이 오신 그분이요. 그분하고 잘 살아야 하는데 그분을 잘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눈길이 가 있는 곳에 가서 봉사하고 싶어요.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찾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그렇게 사는 게 내 행복이지요. 하느님께서 건강을 허락하신 순간까지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기도해야 하겠지요.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현장에 참석해 실제로 실천하는 것이 저에게 주신 탈렌트라고 생각해요. 또 교황님께서 제게 맡겨주신 인류복음화성 위원으로서 임기가 다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고, 새 교구장님과 서울대교구의 발전, 한국 교회와 아시아 교회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로 응원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 신자들에게 어떤 추기경으로 기억되길 원하시는지요.
“잊어줬으면…”(웃음). 너무 적나라한가요?(침묵) 하느님 뜻에 따라 살고자 노력했고, 부족하지만 열심히 살았던 사제로 기억해주면 좋겠고, 제게 상처받은 분들은 저를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글=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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