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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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순례 오셨나요, 여행 오셨나요

참 빛 사랑 2021. 6. 9. 20:40

[미카엘의 순례일기] (22) “여행, 한두 번 다녀보나!”

▲ 본당 순례단이 타보르 산을 향해 난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오래전, 본당 구역장들을 위한 순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신학생 때부터 저와 인연이 있던 신부님께서 첫 주임 신부가 되신 지방의 작은 본당이었습니다. 부임하신 지 3년째 되는 해에 신부님은 본당의 궂은일을 맡아 하시는 구역장들을 위한 순례 일정을 제게 맡겨주셨고, 그간 고생하신 분들이니만큼 여유 있는 일정으로 편안한 순례가 되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당의 회장과 부회장 형제님들께서 특별히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마음으로 같이 가시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이고 여행을 많이 다니셔서 도움이 되실 거라고도 하셨지요. 듣고 보니 그분들과 함께 가면 한결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순례 첫날부터, 자매님들이 두 분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은 오래된 본당 신자이신데도 다른 신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순례 시작부터 두 분은 제게 특별한 대우를 바라셨습니다. 방이 너무 좁으니 스위트룸으로 바꿔 달라고도 하셨고, 일정이 끝난 뒤 신부님께는 비밀로 하고 저녁 시간에 두 분만을 위한 시내 투어를 부탁하셨습니다. 심지어 이탈리아 피렌체 순례 도중에는 “성당을 하도 많이 봐서 그 성당이 그 성당 같다”며 오후 일정은 생략하고 쇼핑센터로 데려다 달라 하시더군요. 제가 황당해 하는 표정을 짓자 “신부님 선물을 사려는 것”이라며 오히려 역정을 내셨습니다.

도저히 들어드릴 수 없는 요구들을 며칠째 완곡히 거절하자, 두 분은 순례 자체에 대한 불만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결국, 볼로냐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고기를 넣어 걸쭉하게 만든 라구(미트 소스의 일종)로 유명한 볼로냐 파스타를 대접하기 위해 따로 방을 잡아 저녁 식사를 마련했는데, 갑자기 회장님께서 포크를 접시에 집어 던지면서 소리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를 뭐로 보는 거야? 며칠째 쌀은 구경도 못 했잖아. 돈은 그렇게 많이 받으면서, 싸구려 호텔에 싸구려 음식뿐이네. 한식이 그렇게 비싸? 나는 외국에 많이 다녀서 괜찮은데, 우리 자매님들이 밥 먹고 싶다잖아! 다들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쌀밥 못 먹어 안달이 났다고! 알긴 알아?”

“내가 동남아를 아주 많이 다녀봤는데 이렇게 한식 안 주는 여행은 처음이야. 유럽은 훨씬 잘 사는 나라인데 한식당이 없을 리가 없어. 그리고 호텔 방은 왜 이렇게 작아? 보나 마나 싼 호텔로 비용 줄이려는 셈이겠지. 성지 순례한다는 것들도 다 도둑놈이긴 마찬가지야!”

돌발상황에 젊은 주임 신부님과 구역장들은 당황하셨고, 식당 직원들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두 분은 그렇게 한참이나 험한 말을 퍼붓다가 끝내는 식당을 떠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변명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자고 싶어서가 아니라고! 유럽은 처음이지만 여행 한두 번 다녀보나? 우리 자매님들이 착하셔서 말을 못하기에 대신 한 거야, 그런 줄이나 알아!”

두 분이 화를 내며 나가신 후, 총구역장님께서 얼른 제 옆으로 오셨습니다.

“미카엘씨,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는 맛있게 먹고 있어요. 그런 불평을 한 사람 없어요. 로마와 베네치아에서만 한식이 준비되었다고 미리 말해주셨으니 다들 알아서 라면에 햇반도 가지고 오고 그랬는데 뭘. 호텔 방도, 설명회에서 이미 들은 그대로예요. 여행이 다 똑같다면서 거긴 참석도 안 하시더니…. 회장님이 괜히 우릴 이상한 사람 만드시네.”

신부님께서도 두 분이 이렇게까지 하실 줄은 몰랐다며 민망해 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신부님과 구역장님께서 밤새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다행히 다음 날부터 두 분은 좀 더 성실한 태도로 순례에 참여해 주셨고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순례를 위해 여러 도움을 주셨습니다. 물론 누누이 “자매님들을 위해서 욕먹을 각오를 했던 것”이라는 이야기를 저에게 반복하셨지만 말입니다.

간혹 순례 중에 일반 여행을 온 것처럼 행동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때문에 마음을 다해 순례의 길을 걷는 분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순례는 없습니다. 어떤 일정이든, 어떤 사람이 모였든, 늘 문제는 있기 마련이지요. 아니, 어쩌면 그런 문제까지도 전부 순례의 과정이며 자신을 돌아볼 기회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곁에 있는 형제자매들과 화합하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발자취를 직접 따라 밟는다 한들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저마다 자기 행동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 자신에게는 자랑거리라 하여도 남에게는 자랑거리가 못 될 것입니다.”(갈라 6, 4)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