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의 순례 일기] (2)

▲ 겟세마니 대성당 제대 앞 바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신자들.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루카 22,44)
세계 각지의 교회들이 십시일반 보내온 기부금으로 지어진 성당, 때문에 ‘만국 성당(The Church of All Nations)’이라고도 불리는 겟세마니 대성당은 예루살렘이 내려다보이는 올리브 산과 그 밑의 키드론 골짜기가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당 내부는 매우 어두운데, 주님의 간절한 기도가 어두운 저녁에 이루어졌음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제대 앞에는 그분의 땀과 피를 말없이 받아냈을 바위가 있습니다. 그곳에 서면,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피땀 흘리시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분의 사랑이 느껴지고, 그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는 내 일상이 부끄러워집니다. 많은 것을 결심하게 되는 순간이지요.
시골의 어떤 본당 식구들이 그곳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준비부터 어려움이 많았던 여정이었지만, 총무를 맡으신 자매님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기쁘고 의미 있는 순례가 되었습니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이셨지요. 부드럽고 온화하신 그 자매님은 미사를 비롯한 모든 전례를 직접 준비하셨을 뿐 아니라 순례 내내 작고 사소한 일까지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인솔자인 제가 할 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신 후 묵상을 하던 침묵의 순간, 자매님의 어깨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큰 소리로 우셨습니다. 성당 안이 그분의 울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우리 순례단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외국인들, 그리고 제의방에 계셨던 수사님들까지도 가까이 달려왔습니다. 저는 그분의 손을 잡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잠시만 맘껏 우시도록 하면 좋겠어요.”
잠시 후 신부님께서 제대에서 내려오셨고, 말없이 자매님을 안아드렸습니다. 붉은색 제의에 파묻힌 자매님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울음을 멈추지 못하셨고 결국 잠시 혼절하셨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자매님은 저와 신부님 사이에 앉으셨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자매님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청하셨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행기 뒤편으로 갔고, 10시간 남짓의 귀국길 내내 애꿎은 스튜어디스를 귀찮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매님은 누구보다 불행한 삶을 사셨습니다. 부모의 얼굴 한번 보지 못했고, 자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수많은 학대를 받았답니다. 그분은 사람을 믿지 못해 결혼도 하지 않으셨고, 타인에게 내면의 상처를 절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혼자 있을 때면 아픔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아 언제나 사람들 틈에 있으려 노력하셨습니다.
하지만 때로 사람은 아픔을 드러내야 하나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견디지 못할 고통을 내리지 않으신다는 말도 있지만,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도 있는 법이니까요. 자매님은 주님께서 피땀 흘리신 그 바위 앞에서 평생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견딜 수 없이 아프고 힘들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행기가 인천에 도착하고, 본당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기 직전 자매님께서 저에게 다가와 수줍게 제 손을 잡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세상과 사람을 원망만 하며 살아왔어요. 제 웃음은 가식이었고 마음은 어두웠습니다. 그날 미사 중에, 나보다 더 아프셨을 그분을 만났습니다. 제 아픔을 알고 계시더라고요. 소리를 내서 울어본 건 처음인 듯해요. 미카엘씨가 제 손을 잡고, 신부님께서 저를 안아주셨을 때, 마치 예수님께 위로받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네요. 잊지도 않을 거예요. 다음에 또 뵈어요.”
자매님은 뒤돌아 버스에 오르셨습니다. 저는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마더 데레사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만일 당신이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사랑한다면 당신이 받은 상처는 결코 치유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더 크게 사랑할 때만이 상처는 치유될 것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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