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생활복음 311

[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2주일 - 세상의 고통과 사회교리

[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2주일 - 세상의 고통과 사회교리 케이 컬쳐(K-culture) 유행, 경제 규모 세계 10위(191개국 중) 달성, 1인당 국민소득 3만 5000달러 돌파 등 우리나라의 좋은 일이 세계적으로 알려질 때 우리는 기쁩니다. 그러나 이런 자랑을 뒤로하면 먹고사는(집 걱정, 노후 걱정, 일자리 걱정, 돌봄 걱정 등) 일상의 고단함으로 허탈해지기 십상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살면서 겪는 고통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교회의 사회교리는 이정표·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제41회 인권 주일이며 제12회 사회 교리 주간(12월 4일~10일) 첫날입니다. 사회교리는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공동선을 증진할 수 있도록 사회의 다양한 영역(인..

생활복음 2022.12.03

[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1주일 - '깨어있음'의 참의미

“그러니 깨어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4,42) ‘주인과 도둑’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깨어있으면서 주인에게는 문을 열어주고, 도둑은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막아내는 겁니다. 하지만 요즘 같으면 깨어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집주인이라면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 것이고, 도둑이라면, 보안 시스템 설치로 엄두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깨어있음은 단순한 파수(把守)가 아닌 것 같습니다. 1. 달리 보는 것이 깨어있음이다.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맷돌질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마태 24,40) 데려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이곳에 남는 것은 살아남는 것이 아닌가? 그러..

생활복음 2022.11.26

[생활속의 복음] 그리스도왕 대축일 - 모든 것을 바치신 우리 임금님

대한민국 헌법 제20조에서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천명합니다. 종교가 정치와 밀접히 연결되어 관여했을 때 발생했던 여러 부작용과 폐단을 생각하면, 각자의 영역을 정확히 구분하고 존중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다만, 우리 삶의 어느 부분까지를 ‘정치’의 영역으로 볼 것인가가 문제가 됩니다. ‘정치’란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을 의미하지요. 종교가 그런 공적인 국가권력에 간섭하거나 개입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정교분리의 원칙’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각종 사회문제와 부정, 비리를 바로잡고 개선하는 일을,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며 공동선을 실현해야 할 신앙인으로서의 마땅한 책무까지 나 몰라라 한다면 그건 명확한 ..

생활복음 2022.11.19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3주일- 두려움과 공포 대신 희망 주시는 분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입니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여 삶을 제 뜻대로 영위하지 못하는 상황을 불안해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방식으로 그 불확실성을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세상에 사는 인간으로서는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고, 그것을 잘하는 사람들을 ‘현명하다’고 하지요. 하지만 그런 ‘인간적’인 방식으로 대비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내가 살아있을 때까지만입니다. 그러면 죽음 이후에 맞게 될 새로운 삶, 영원히 이어지게 될 그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요? 그리스도교에서는 그 시간을 ‘종말’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그 종말에 대한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전이 존재하는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

생활복음 2022.11.12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2주일, 평신도주일 - '신신우신' 신자님 신자님 우리 신자님

오늘 우리는 ‘평신도 주일’을 기념하며 평신도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되새기려 합니다. 평신도는 자신의 사도직을 통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교회 밖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 감염증으로 많은 어려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함께살이’(함께 살아가는 삶)의 마음을 지니고 실천해야 함을 더욱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전개되는 ‘함께 걷는 여정인 시노드’의 정신과 여정은 우리에게 이러한 지향으로 살아갈 것을 더욱 재촉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일치를 본받아 교회 공동체가 ‘친교’를 이루고, 각자가 받은 은총의 선..

생활복음 2022.11.05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1주일- 행동으로 옮긴 진정한 회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자캐오는 소통과 친교의 부재, 그리고 그로 인한 외로움과 고독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단지 키가 작은 것만 문제였다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예수님을 바라볼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배척당하며 마음이 잔뜩 주눅이 든 그는 누군가와 어울리며 부대끼는 게 싫었기에 따로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거기서라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예수님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을 터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작은 체구로 돌무화과나무 위까지 올라간 것은 그저 타인에 대한 불편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키가 작다는 핸디캡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그분을 만나 슬픔과 절망이 가득한 자기 삶에 의미를 더하..

생활복음 2022.10.29

[생활속의복음] 연중 제30주일, 전교 주일 -‘신앙의 길 함께 걷자’ 손 내밀어야

어둠 속을 항해하는 배들이 등대의 빛을 보고 길을 찾듯이, 혼돈과 불확실성 속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은 누군가가 진리의 길을 보여주고 희망의 빛을 비춤으로써 삶에 위로와 힘을 주기를 고대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삶과 행동으로 온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모두 함께 올바른 길을 걸어 삶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을 들으면 많은 신자분이 부담스러워 하십니다. 나도 주님에 대해 잘 모르는데, 나도 똑바로 살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인데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부담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이들 중에도 그분의 존재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던 이들이 있었으니까요. ..

생활복음 2022.10.22

[생활속의복음] 연중 제28주일 -모든 것이 ‘당신 덕분’임을 고백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병환자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하게 누리는 건강한 피부의 은총을 누리지 못한 이들입니다. 살이 썩어 문드러지는 육체적인 고통과 하루하루 흉한 몰골로 변해가는 자기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정신적인 고통. 그 병이 옮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야만 하는 외로움, 사람들로부터 ‘괴물’, ‘죄인’이라고 손가락질받고 무시와 핍박까지 당하는 정서적 고통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가까운 곳에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희망이신 그분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매달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그 자리에서 바..

생활복음 2022.10.08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7주일, 군인 주일-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오늘은 연중 제27주일이면서 제55회 군인 주일입니다. 제가 군종 사제가 되어 첫 군인 주일을 맞이했을 때가 제44회였으니, 저도 10년이 넘게 군 사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올해는 지난 2년간 코로나로 막혀 있던 군종 사제들의 각 본당 파견이 허락되어 각 교구의 본당을 찾아가 군인 주일을 홍보하고 후원을 청할 것입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처럼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군 사목의 환경도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용사들의 군 복무 기간도 많이 줄어들었고, 무엇보다도 하루의 일과가 끝난 이후 시간과 주말에는 핸드폰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죠. 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면 예식을 치를 수 없게 되었을 때, 미사를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교리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등 변화된 환경에 유연하..

생활복음 2022.10.01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6주일 - 하느님 나라로 갈 수 있는 ‘다리’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고 따르면 그분께서 내 이름을 기억해주시고 내 신원을 보증해주십니다. 그분께서 나의 현재와 미래에 함께하시며 보살펴주시기에 세상의 금은보화가 없어도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그런 하느님이 아닌 재물에 믿음을 두었고 그것이 그의 ‘죄’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손에 쥔 재물을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과 쾌락을 위해서만 사용하며 타인의 배고픔과 괴로움 앞에 무관심하고 인색했습니다. 그런 차가운 무관심과 방치 때문에 종기로 고통받던 형제가 그의 집 대문 앞에서 쓸쓸하게 죽어갔지요. 그가 하느님께 믿음을 두었다면 남을 미워하지 않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가 진정 하느님을 믿었다면 자기 문앞에 누워..

생활복음 2022.09.24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5주일 -하느님과 재물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지니고 또 누리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온전히 ‘내 소유’가 아닌 상황,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부족하고 약한 처지, 그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집사’로 비유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잘 관리하며 누리다가 그분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이들에게, 원하시는 방식으로 잘 내어드려야 할 ‘집사’의 소명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소명을 망각할 때가 참 많습니다. 자신이 갖고 누리는 모든 것들이 ‘내 것’이라고 착각하여 제멋대로 오남용하고, 그것이 천년만년 갈 것처럼 욕심부리고 집착하는 겁니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느님 앞에 서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은 손에 쥔 모래처럼 다 빠져나가 버리고, 하느님 앞..

생활복음 2022.09.17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4주일 - 착한 목자와 잃은 양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자기 자식들을 모두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부모 마음은 당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마음과 닮아 있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창조하신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좋다’고, 엄지를 치켜들어 주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런 하느님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사람들이 ‘죄인’으로 낙인찍고 배척하는 이들을 당신 품에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시고 식사까지 함께하시며 하느님의 축복과 사랑이 그들 모두에게 빠짐없이 전달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그런 예수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실현할 메시아라면, 그 나라를 기다리며 율법과 계명을..

생활복음 2022.09.10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3주일 - 예수님 제자의 세 가지 조건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는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십계명에도 부모를 공경하라고 되어 있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셨는데, 가족을 미워하라니요…. 그런데 ‘미워하다’라는 히브리 말의 뜻이 ‘덜 사랑하다’, 혹은 ‘둘째 자리에 두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가족관계를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가족 사랑’을 ‘하느님 사랑’보다 더 상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으면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고 하신 말씀입니다. 아니 어떻게 가진 것을 ‘다’ 버리란 말입니까? 이건..

생활복음 2022.09.03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2주일 - 기쁨의 잔치에 초대받은 우리의 자세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바리사이 지도자들은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려고만 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자신이 초대받은 잔치 그 자체보다는 ‘자리’와 ‘대우’에만 쏠려 있습니다. 잔치에 초대받았다면 그 잔치를 베푼 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게 먼저입니다. 또한, 주인이 그 잔치를 베푸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잘 헤아려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자신이 더 돋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에만, 주인이 자신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귀한 사람으로 ‘대우’하는지에만 주의를 기울인 것입니다. 이처럼 ‘자리’에 집착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에 신경 쓰는 사람은 보통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고 ..

생활복음 2022.08.27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1주일- 하느님 나라는 정원제가 아니라 점수제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세상의 논리로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기에 생기는 의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모두가 선호하는 ‘좋은 자리’는 그 숫자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에서도 참된 행복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좋은 자리는 그 숫자가 정해져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구원’이 열심히 노력해봐야 어차피 이르지 못할 목표라면, 괜한 헛고생 하지 않고 지금이라도 쉽고 편한 삶을 누리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몇 명이나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고 그 ‘숫자’를 묻는 말에,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지 ‘방법’으로 답하십니다. 구원의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

생활복음 2022.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