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생활복음 311

[생활 속의 복음] 성체 성혈 대축일-세상을 아버지의 생명으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6) 미사 후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자매 하나가 무슨 말을 하려고 멈칫거립니다. 괜찮다며 말씀하시라 하자 이내 입을 여십니다. 나에게 성체를 받아 모시면 기분이 아주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너무 성의 없이 성체를 분배한다는 겁니다. 청천벽력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불 꺼진 성당에 가 앉았습니다. 성체를 이루는 손이 어찌하여 기분 나쁜 손이 되었을까? 억울하고 한심했습니다. 숙달된 빵 장사 솜씨를 그리도 보여주고 싶었을까? 물건을 전해주고 서둘러 돌아서 갈 길을 가는 택배기사가 아니지 않는가. 성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부족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체를 건네주고 받을 때 사제와 교우들은 ..

생활복음 2023.06.13

[생활 속의 복음]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하느님의 신비, 그 신비 담은 인간의 신비

안드레이 루블로프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성부에게서 파견되고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성자의 수난과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였고, 오순절에 성부와 성자에게서 파견되신 성령의 강림 사건으로 전례력상 부활 시기를 마쳤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이로써 하느님의 세 위격이 다 계시되었기에,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에 교회는 삼위일체 대축일을 경축합니다. ‘위격이 다른 세 분이 같은 하느님 한 분’이시라는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로서는 이해 불가능한 ‘신비’입니다. 이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철학적, 신학적 개념들이 동원됩니다. ‘위격’(persona)과 ‘본질’(natura, essentia, substantia)이라는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용어를 동원하여 학문적..

생활복음 2023.06.06

[생활 속의 복음] 성령 강림 대축일 - 교회의 영혼이요 모든 것인 성령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령칠은을 말합니다. 두려움, 효경, 지식, 용기, 의견, 통달, 지혜의 은혜입니다. 이중 근간이 되는 은혜는 두려움과 효경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은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느낀 공포와는 다릅니다.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미소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 경외(敬畏)입니다. 하느님만을 두려워하면 모든 것에선 자유롭지만,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세상 모든 것에 겁박당합니다. 효경의 은혜는 그 두려우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은혜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입니다. 이 두 은혜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이끄는 두 개의 수레바퀴에 해당할 ..

생활복음 2023.06.01

[생활 속의 복음] 주님 승천 대축일 - 주님 승천은 더할 나위 없는 임마누엘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18) 우리는 ‘하늘로 오르시어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심판자로 오실 주님’을 고백합니다. 무덤의 부패를 겪지 않고 하늘로 오르신 분이 두 분 더 있습니다. 종말 때 나타나리라는 엘리야 예언자와 성모님이십니다. 주님의 심판대에 설 때, 엘리야 예언자가 검찰관 역할을 한다면, 성모님은 우리를 적극적으로 변호해 주실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주님이 하늘에 오르시는 것을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주님을 보고 제자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자신들과 멀어진다고 여겼을까요? 1. 승천은 역설적인 주님의 현존 주님의 승천은 세상과의 결별이 아닙니다. 주님은 땅에 존재하는 것들을 축복하고 들어 올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쏘아 올려진 인공위성이 지구 곳곳..

생활복음 2023.05.26

[생활 속의 복음] 부활 제3주일-당신 자신이며 일상인 빵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 23,30)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희망이었던 스승이 그만 십자가형으로 죽었습니다. 터덜터덜 낙향 중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일어난 절망스러운 사태를 되짚어보고 있었을까요? 여자들이 천사를 통해 들었다는, 바로 그분이 살아계시다는 말은 또 뭔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그때 주님이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눈이 가리어졌다고 복음은 말합니다. 왜 눈이 가리어졌을까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근심과 걱정뿐이어서 그럴까요? 뭔가에 사로잡혀 있다면 여간해서는 제대로 보기 어렵습니다. 자기 안에 갇혀 있으면 보고 싶은 것만 보..

생활복음 2023.04.27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1주일 - 나쁜 것이 실은 좋은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마태 4,1) 우리 교회는 언제부터 유혹에 약해졌을까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국교로 선언하고부터라고 합니다. 끔찍했던 박해상황에서 절대 권력의 비호를 받자 승리감에 도취했을까요? 봉사 직분이 권력화되고 성직자들의 재산축적 등이 문제가 되었다고 역사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식생활의 탐식, 고위성직자들은 제후들의 복색을 흉내 내고 세속의 가치관에 따라 승리를 구가합니다. 악마의 수법이 저절로 먹히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어느 정도 박해가 있어야 건강하다는 이냐시오 성인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순 시기는 우리 스스로 일종의 박해상황을 연출하는 겁니다. 악마의 광야로 예수님을 내몬 것은 사탄이 아니라 성령이었습니다. 1. 유혹에 기죽지 말..

생활복음 2023.02.25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7주일- 원수는 이웃의 또다른 이름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사제는 직무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는 일상에서 용서를 비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저로 인해 상처를 입고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해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저의 못난 탓도 있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 교우들끼리의 다툼이나 어려움에도 일정 부분 저의 책임이 있음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권한이 크면 책임도 큰가 봅니다. 용서해 주는 입장이 아니라, 용서를 빌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1. 원수가 누구인가? 왜 용서해야 하는가? 예수님에게 원수란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용서하고 화해해야 할 이웃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요. 원수를 구체적인 한 인간으로 떠올려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혀 ..

생활복음 2023.02.18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6주일 -지체가 아니라 죄를 잘라라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한자 한 획’(18절)을 강조하는 건, 작은 것 하나도 소홀히 대하지 않아야 함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작은 것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큰 것에만 관심을 보입니다. 물론 사소한 것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작은 것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줍니다. 어느 면에선 작은 것이 더 본질적입니다. 그 작은 것, 그걸(계명) 어긴다 해도 구원에 지장이 없다고 해도 그 작은 것을 지켜 온전히 의로움을 살아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작은 이 하나와 당신을 동일시하십니다. 작은 것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와 관련이 없나..

생활복음 2023.02.11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5주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복음의 앞 문맥을 살펴보면, 산상수훈 담화문을 시작하는 ‘참행복(진복팔단)’에 바로 뒤이어 나오는 구절들이 오늘의 복음 구절입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 행복선언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 하신 다음에 바로 오늘 말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는 말씀이 이어지기에, 여기에서 ‘너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참행복의 정신으로 살고자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금과 빛은 일상생활에서 보거나 성경의 전통에서 볼 때, 굉장히 중요한 은유입니다. 예로부터 ‘소금’은 음식..

생활복음 2023.02.03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주일- 제 삶에 당신의 지분(持分)이 있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 29) 50년 이상을 함께 산 부부가 어느 날 배우자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냐며 놀랐다는 말을 듣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았지만 모르는 것이 있는 겁니다. 제 모친도 결혼 50년이 지나서야 어떤 사건을 계기로 당신이 부친을 많이 사랑하는가 보다고 말합니다. 그 사건은 다행히 부친의 임종이 아니라 가출 사건이었습니다. 하여튼 안다는 것, 제대로 된 앎은 쉽지 않나 봅니다. 알면 알수록 사랑이 생기고 사랑이 생기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앎, 그런 진짜 앎 말입니다. 1. 우리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고백하자 요한 세례자는 자신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다고 두 차례나 거듭거듭 밝힙니다. “나도 그분이 누구인지 몰랐다.”(요한 31.33) 사실 요..

생활복음 2023.01.14

[생활속의 복음] 주님 공현 대축일 - 떠나면 길이 보입니다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마태 2,11) 우린 길을 떠나야 합니다. 떠나면 길이 보인다 했습니다. 길 떠나는 동방박사들이 됩시다. 우린 지상의 순례자들입니다. 인생 자체가 여행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여행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인용한 인디언 격언입니다. 누구나 떠나야 하는 내적 여행을 말합니다. 떠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인생의 비밀이 있습니다. 걸을 수 있는 분들에겐 실제로 걸어나가기를 권합니다. 매일 8~9km씩 한참을 걷다 보면 진정 다른 인생을 만난다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새해 시작해 볼 수 있는 멋진 도전이 될 것입니다. 1. 동방 박사들의 여정과 깨달음 그들은 불리움을 느끼는 순간 짐을 쌌습니다..

생활복음 2023.01.07

[생활속의 복음]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나약함’ 안에 깃들어 있는 신비

오늘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교회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신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경하며 경축하고 있습니다. 이 축일의 성서적인 증언은 성모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 성녀의 기쁨에 찬 외침인 “내 주님(κριο)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43)에서 비롯합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18.23ㄱ)라는 말씀에서 분명한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일관되게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의 강생이 성령으로 말..

생활복음 2022.12.31

[생활속의 복음] 주님 성탄 대축일 - 가난의 표징으로 둘러싸인 갓난아기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권력자의 호적조사령으로 요셉은 만삭의 마리아와 함께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요즘도 그렇습니다. 권력자들에 의해 전쟁이 터지고 징집이 되고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많은 이들은 살 곳을 찾아 떠돕니다. 우크라이나, 미얀마 등이 그렇고 여기저기 폭압자의 어둡고 음습한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무기 공급이나 승전 소식이 희망이 아닙니다. 한 아기의 탄생, 그렇습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희망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아기의 탄생 역시 위대하고 근본적인 희망이라는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숨통을 열고 세상에 나와 울음을 터뜨릴 모든 작은 생명에게 축복이 있길 빕니다. 1. ..

생활복음 2022.12.24

[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4주일- 성 요셉, 이미 하늘나라를 사신 분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 김수환 추기경은 추천 영화로 몽골 영화 ‘칭기즈칸’을 꼽았습니다. 칭기즈칸의 어느 면이 좋았을까요? 마지막 장면에 답이 있어 보입니다. 칭기즈칸은 이웃 부족에게 빼앗긴 아내를 구해냈는데 아내는 이미 적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괴로워하면서도 결국 갓난아기를 하늘에 들어 올려 자기 아이로 받아들입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닐지 몰라도 다음의 자막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때부터 피에 물든 대초원에 평화가 찾아왔다.” 1. 자기 욕망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하느님의 뜻에 가깝다. 요셉은 사랑하는 약혼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잠자리를 같이하기 전의 일입니다. 청천벽력입니다. 요셉은 어떤 조처를 할 것인가..

생활복음 2022.12.17

[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3주일- 주님의 길을 가야 할 우리들

“오실 분이 선생님입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 밀밭회원(장애인모임) 베드로 형제는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요즘은 말도 그렇고 걷는 것도 더 힘들어졌습니다. 그런 그가 전에는 장애가 저주스러웠는데 지금은 고맙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장애 때문에 하느님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신체장애가 하느님을 가까이 느끼게 해주는 선물이라니, 참 놀라운 고백입니다. 1. 메시아 도래의 표징은?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하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5-6절) 주님이 요한 세례자의 제자들에게 당신이 바로 오실 분,..

생활복음 2022.12.10